2020년

49재에 대한 선지식 스님의 글 옮김

향광장엄주주모니 2020. 8. 14. 15:42

카페에 공왕불 기도자가 천도재가 부처님 가르침이 아니라는 글을 위시한 아주 많은 글들을 올려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참지 못하는 저이기에 글을 읽고 혼란해질지도 모를 누군가를 위해 지장경의 이익존망품을 글로 옮겨 적어주었습니다. 그냥 흘러가도록 두는 것이 최선인지 아직 잘모르겠습니다.

 

더하여 두 편의 글을 더 적고 나서 평소 선지식으로 마음에 담은 스님의 카페에 들어가니 오늘 올라온 법문이 사십구재에 대한 글입니다. 아, 불법은 참 묘하고 묘하여 목마른 순간 감로수를 내리고 길을 잃은 순간 슬쩍 길 하나를 던져줍니다. 찾는 자에게는 그것이 부처님의 손길임이 절절히 느껴집니다. 천도가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할 순간입니다.

 

스님의 법문 중 일부입니다.

 

어제 사십구재를 모셨습니다. 재의식이 시작되었는데도 가만히 서 있기만 한 유족들을 보고, 잠시 의식을 멈춘 뒤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영가의 이름을 부르거나 본인들의 이름을 부르면 절을 하도록 하세요.” 그러자 재주인 부인이 말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저의 아들들이 모두 교회를 다녀서요.” “종교가 다른 분은 절을 안 해도 됩니다. 앞으로 3시간 정도 걸리므로 다리가 불편한 분은 자리나 의자에 앉으셔도 됩니다.”

 

다른 종교를 배척해서는 안 되므로, 와서 참석한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기고, 불편 없이 있을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재의식을 하는 동안 나는 나대로하고, 저들은 저들대로 별생각 없이 그냥 앉았다가 가는 시간이 되지 않도록 불교의 천도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 지를 좀 더 쉽게 알 수 있게 진행하였습니다.

 

3시간의 천도의식이 끝나고 2층 법당의 공양물을 모두 내려온 뒤, 그냥 갈 줄 알았던 그분들이 점심 공양을 했고, 신도가 재를 마친 과일과 떡, 과자 등을 싸주자 그것을 들고는 내 방문을 열고 인사를 하고 떠나면서 말했습니다. “스님, 수고하셨습니다. 시간이 날 때 들리겠습니다.”

 

재를 지내면서 자주 생각하는 것이지만 불교의 천도재가 획일화된 형식에 치우치지 말고 좀 더 대중들과 함께 할 수 있도록, 장중하면서도 누구나 쉽게 따라하고 공감할 수 있고, 깨달음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재나 불공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

 

천도는 떠나는 영가와 남는 가족과의 이별의 아픔을 잘 갈무리해주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가야만 하는 자는 가벼운 걸음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모든 미련과 집착을 버리게 하고, 남은 자는 다시 볼 수 없는 그리움과, 아쉬움을 내려놓고 부모의 몫까지 더 열심히 살아갈 수 있도록 크게 발심하는 계기가 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천도재를 자신의 고통을 벗어나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고 이것을 이용하려는 이들이 있어서 천도재의 의미가 흐려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자신의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천도재를 하라는 말은 아직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망자를 위해 천도재를 한 결과 그 공덕으로 망자가 힘을 얻고 산 자가 복을 얻는 것이지, 역으로 생각하여 천도재를 한다면 이상한 일이 됩니다. 그건 또 하나의 이기적인 욕망과 비슷합니다.

 

가끔 49재에 참석하면 떠나는 이가 복의 힘을 얻어 편안하게 부처님의 법으로 들어가기를 기원하고, 남은 이들이 슬픔에 머물기보다 새로운 힘으로 밝은 삶을 살아가길 기원합니다. 그렇게 배워졌습니다. 우리가 행하는 천도재, 49재가 이런 것이 된다면 부처님의 가르침과 함께 가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천도재를 지낸다면 부디 "당신이 편안하기를 기원합니다." 하는 발원으로 욕심이 아닌 놓아버리고 베푸는 천도재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