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을 읽던 초기에 안락행품을 참 좋아했다. 법화경을 말세에 홍포하고자 하는 보살들은 이러해야 한다고 적으신 품이 안락행품이다. 오늘 안락행품을 읽다가 두번째 성품의 게송 중 한 구절을 적어보고 싶어졌다.
다만 지혜로운 이라면 항상 생각하되
어찌해야 나와 이 중생 모두가 성불하려는가
세간의 이익을 위해 내가 이 정법을 설하노니
여기에 일체 중생의 복락이 달렸도다 할지니라
부처님은 말세에 법화경을 홍포하고자 하는 보살에게 늘 이렇게 생각하라 하신다. '어떻게 하면 중생과 내가 모두 성불할까. 세간의 이익을 위해 이 정법을 설하니 여기에 일체 중생의 복락이 달렸다.'
법화경을 읽다가 글을 적자 마음먹었을 때에는 쉽게 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나의 가벼운 글로는 이 구절에서 느껴지는 깊이를 담아내기 어렵지 싶어졌다. 글을 썼다 지웠다 반복하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표현은 고작 이런 것이다. '이런 마음이어야 한다. 법화경을 홍포하는 보살의 마음은.' 부끄러워해도 괜찮은 순간이다. 법화경을 홍포하고자 한다면 이런 마음을 배워야 한다.
왜 좋은 것을 가까이 하라 할까. 여러가지로 답할 수 있지만 오늘 같은 일이 있기 때문이다. 법화경은 늘 좋은 것인데 그 좋을 것을 자주 접하고 가까이 하다 보면 오늘처럼 마음에 깊은 울림을 남기는 순간이 오게 된다. 그 깊은 울림은 삶을 변화시키는 힘이 된다. 좋은 삶이 될 것이다.
'2019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룡스님) 한가지 공부를 꾸준히 하십시오. (0) | 2019.08.29 |
---|---|
(법화경 여래수량품) 죄업과 선업의 과보 (0) | 2019.08.28 |
자기에게 맞을 때 좋은 것(덕도스님) (0) | 2019.08.28 |
(법화경 초목품) 방편을 잘 쓰는 스승으로서 (0) | 2019.08.28 |
운이 좋은 사람(복많은 사람) (0) | 2019.08.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