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에서 잠을 자면서 꿈을 꿨다. 새벽에 일어나기 전에 꾼 꿈들은 나의 내면, 또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에 대해서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부분이 투영된 것 같기도 했다. 학교기관의 강당같은 넓은 곳에서 누군가의 강의를 듣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는 그 곳에서 커다란 종이를 받았다. 과제 안내서같기도 하고, 평가서같기도 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채 안절부절하는 마음이 되었다. 무언가 명확하지 않았고 단지 내가 할 수 없는 무언가를 요구한다는 생각, 내가 잘하지 못했거나 잘하지 못하겠다는 불안감마저 일었었다. 그런데 내가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자격을 인정해주는 자격인증서(?) 같은 의미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꿈을 깨면서 점점 그렇게 느껴졌다.
이어지는 꿈에서 나는 건물의 화장실 앞에 있었다. 출입문이 나무로 만들어져있는데, 왜 그런지 모르지만 그 화장실을 청소해주겠다는 생각을 했고 나무문을 향해 물을 끼얹었다. 까만 물이 떨어지면서 문의 때가 벗겨지는 것이 보였다. 그전에 물로 잘 불려놨었나보다 싶었다. 그리고 문을 열었다. 어두운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출입문에서 들어가면서 꺽여진 안쪽 공간에 여러칸의 화장실이 있다는 것이 알아졌다. 그런데 너무 두려웠다. 어둡고 괴기한 분위기 속에서 위험이 닥칠 것 같은 두려움이 느껴져서 꿈 속에서도 자신있게 화장실로 들어가지 못했다. '혼자서는 안되겠다, 누군가를 데려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꿈을 깼다.
아침에 가만히 누워 꿈을 생각해봤다. 사실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나름 마음에 닿는 생각들이 있었다. 그동안 직장에서 휩싸이고 물들어가는 과정 중에서도 부처님을 놓는 것이, 멀어지는 것이 참으로 두려운 일이라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렇게 놓지 않아서였을까. 내가 불자로서 무엇인가를 해나갈 자격이 아직은 있다는 것을 깊은 내면이 말해주는 것 같다. 또 누구의 것인지 모르지만 어둡고 두려운 부분을 깨끗하게 하고자 하는 뜻이 나에게 여전하며 다만 혼자서 하기에는 너무 깊은 어둠이라는 것을 또한 알려주는 것도 같다.
가만히 누워 화장실이 눈부시게 밝아지는 관을 했다. 두려워했던 나를 돌이키고 법계에 가득한 불성으로 나를 채워 어둡고 두려운 화장실을 밝고 편안하게 만들어가리라 마음먹었다. 관에 대해 적었으니 잠깐 적어볼까 한다. 관은 쉽게 말해 이미지를 그리고 상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내 근기에서 이해한 바는 그러하다. 너무 간단하지 않은가. 그런데 이 간단한 일이 사실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말해야겠다. 아주 신기하다. 뜻대로 이미지를 그린다고 그려지지 않는다. 내가 처음 누군가를 상상하려 할 때 어둠과 비슷하게만 그려졌다. 한참을 수행하고서야 환한 거리를 그릴 수 있었고 환한 사람을 그릴 수 있었다. 이제는 마음먹고 뜻대로 그리는 것이 매우 원활하다.
잠깐 이야기가 옆으로 샜는데 어찌되었든 오랜만에 생각할만한 꿈을 꾸어 적어봤다. 무서운 화장실은 누구의 마음, 누구의 일일까. 가끔은 나의 일을, 가끔은 다른 이들의 일을 꿈으로 엿보는 것도 같다. 너무 매이지 않고 때에 따라 무시하거나 던져버릴 수 있는 마음이라면 이런 꿈을 꿀 때 무슨 의미일까를 생각해보는 것도 불자에게는 유익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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