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분이 카페에 이런 질문을 했다. '나는 성실하게 살아온 것 같은데 실패, 패배감이 들어 마음이 그렇고 성실을 우선으로 하여 산 것 같은데 그랬는지 잘모르겠다. 어떻게 살아야 성실하게 살았다고 할 수 있을지, 또 성실하게 산다는 것이 바르게 살았다고 할 수 있는지 오래 살아온 인생선배님들의 고견을 듣고 싶다'고 했다. 글을 읽고 잠깐 잠깐이지만 이틀을 생각했다. 무슨 문제일까.
문득 살이 찌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예전에 어디에선가 들은 이야기인데 뭔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이것, 저것을 먹는 사람이 있다. 음료를 마시기도 하고 다른 음식을 섭취하기도 한다. 그런데 전문가가 말하길 그럴 때 몸이 원하는 것은 수분, 물일 경우가 있어서 물을 마셔야 그 욕구가 만족된다는 것이었다. 표현이 얼마나 정확한지 모르겠는데 대략 그런 내용이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몸이 원하는 것을 알고 그것을 해결해줘야 문제가 사라진다는 이야기였다.
왜 성실한 삶을 이야기하는데 이 이야기가 떠올랐을까. 다르지 않은 문제를 그의 글에서 느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만약 성실함이 부족한 것으로 드러나 앞으로 게으르지 않게 더 많은 것들을 해나간다면 앞으로 그의 마음이 편안해질까. 그의 삶이 성실함, 그 자체라고 세상이 인정하면 그는 지금 바로 만족감을 느낄까. 성실함이 곧 바른 것이라고 모두가 인정하면 실패감이 성취감으로 바뀔까. 그럴수도 있지만 아마도 사람들이 그렇다고 하는데 왜 나는 만족스럽지 않을까를 고민하지 않을까 싶다.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으로 행복을 느끼는가, 다시 말해 행복의 기준과 의미가 무엇인지, 그것을 하루 하루 살아가는 삶 속에서 진지하게 마주하는가라고 생각한다. 성실한가 아닌가가 핵심은 아닐 것이다. 물론 삶을 마주하여 하루 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하지만 성실은 행복의 전제조건이지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고 본다. 당신의 깊은 내면은 무엇을 행복하다 여기고 있는 것일까.
내가 성실한지 성실하지 않은지, 성실이 곧 바른 삶인지를 고민하기 전에 내 깊은 내면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 그것이 채워져야 만족하고 행복해지는 것이니 행복은 외부의 평가에 달려있지 않다. 또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행복은 오늘을 희생해서 내일 얻어야 하는 가치가 아니다. 지금 행복하고 내일로 이어져야 참된 행복이라 할 수 있다.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할까. 각자의 문제이므로 이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고 하나로 꿰어 말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으로 내가 행복한가를 생각해보면 행복은 감사함, 귀히 여기는 마음에서 오는 것 같다. 오늘 삶이 주어졌으니 감사하다. 건강하여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으니 감사하다. 불법을 만나 나의 삶을 밝게 하고 주변의 사람들도 편안하게 할 수 있으니 감사하다. 주어진 것에 대한 감사함, 부족한 것을 채워나가는 노력으로 내일 더 좋을 것이라는 기대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성실함에 대해 물어본 질문에 행복을 들어 묻고 싶어졌으니 딱 맞아떨어지는 답이 되기 어렵다. 하지만 결국은 만족스럽지 않은 인생에 대해 왜 그런가를 고민하는 것이니 나의 행복은 어디에 있으며 그것을 행복으로 규정지었을 때 내 깊은 내면에서 만족감을 느낄지를 스스로 알아가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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