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일체법의 공함과 대승의 공덕

향광장엄주주모니 2019. 2. 26. 11:36

견탑품(제바달다품)에 보면 문수사리보살이 바다에 머무는 동안 얼마나 많은 중생을 교화하였는지 묻는 지적보살의 질문에 헤아리지 못하는 중생을 교화하였노라고 답하는 부분이 있다. 그 뒤에 이 교화받은 중생을 설명하는 글 중에 이런 표현이 나온다.

'저들 중 본래 대승을 닦았던 보살들은 대승과 육바라밀의 공덕을 찬탄하였고 또 본래 성문이었던 이들은 성문승을 찬탄하였지만 기실 모두가 일체법의 공함과 아울러 대승의 공덕을 인지하는 바였다.'


의미를 나름 새기며 지나갔는데 오늘은 마음에 명확하게 들어오는 것 같다. 세간에서는 대부분 소승과 대승을 분리하여 생각하지만 부처님이 가르치는 진실은 두 가지를 모두 합해야 온전해진다는 말이 아닐까. 이는 일승을 분별하여 삼승으로 설한다는 법화경의 표현과 다르지 않다. 일체법이 공함도 진실이요, 대승의 공덕도 진실이다. 문수사리는 법화경만을 가르쳤다고 했는데, 그 결과 법을 배운 이들은 일체법의 공함을 알아차렸고 대승의 공덕을 마음에 담게 되었다. 그러니 우리가 법화경을 바르게 배운다면 처음에 무엇을 마음에 두고 법을 배우든지 문수사리의 교화를 받았던 이들처럼 점차 일체법의 공함과 대승의 공덕에 점점 마음이 닿게 되리라 본다.


2월의 많은 시간을 법화경 공부하는 다른 이들의 주장에 대해 고민하고 나의 이해를 적는 것으로 보냈다. 어제는 문득 그게 좋은 일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 길을 가는 중이며 마음에 바른 뜻을 세우고 있다면 그 뜻이 종래에는 좋은 길, 안전한 길로 이르게 할 것인데 자연스러운 흐름을 중간에 방해하는 일이 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 나 역시 잘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일 뿐인데 나의 이해가 바르다고 전제하는 꼴이 되기도 하니 이런 시각이 강화되면 엉뚱한 마음, 교만, 아집으로 빠질 수도 있다는 생각, 나의 작은 이해가 누군가의 신심을 흐리는 일이나 법을 설하는 법사의 방편을 방해하는 일이 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 등 여러 생각이 올라왔다. 나눔이 좋은 일이 되었으면 좋겠지만 법에 대한 이야기이니 늘 이야기 자체에도, 표현에도 신중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글을 읽는 분들도 법에 대한 신중함을 마음에 담아 어떤 상황에서도 유익함을 끌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