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홍익학당 유튜브 강의를 하나 보았다. 가끔씩 불교 관련된 글이나 영상을 둘러보는 곳 중의 하나인데 불자로서 다 공감하는 것은 아니지만 수행하면서 도움을 많이 받았었다. 한동안 찾지 않았는데 가끔 궁굼할 때 들어간다. 요즘은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몇 주 전에 한 방에 이해하는 불교 총정리라는 제목을 보고 강의를 틀었는데 그 강의 안에 있는 말을 빌어 법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다시 한번 말하고자 한다. 평소 내가 생각하는 바와 통하는 말이니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서 기뻤다. 또 개인적 생각이지만 윤홍식씨는 여러 종교를 아우르며 그 종교 안에 흐르는 진리, 결국은 하나로 흐르는 진리를 풀이하여 말하고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말하니 초보 불자인 내가 말하는 것과 그 깊이가 비할 바가 아니다.
동영상에서 윤홍식씨가 말하길 누군가의 견해에서 비롯된 해설이 아닌 경 그 자체를 읽고 이해해가는 것이 좋다고 했다(말을 정확히 기억못해서 표현을 제대로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맥락의 말이었다). 해설서나 논설이라는 것이 잘못된 이해를 바탕으로 한 누군가의 의견일 수 있기 때문이다. 법을 배워오면서 내가 닿아있는 의견과 같은 이야기여서 기뻤다. 거듭 주장하는 바인데 부처님의 말씀 그대로를 읽고 사유하여 얻는 바가 더 안전하고 정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며칠전에는 기독교의 한 사이비 종교에 빠졌던 전도사의 동영상을 보았는데, 그가 말하길 사이비 종교에서 가르치는 논리에 익숙해지면 모든 성경의 말씀이 그렇게 왜곡된 상태로만 이해된다고 했다. 그렇게 인이 한번 박히면 회복에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도 했다. 이는 불교의 어떤 논설을 따르다보면 그런 시각으로 봐야만 법이 이해된다고 하는 윤홍식의 말과 같은 선상에 놓여 있다.
무엇인가를 접했을 때 이상하다고 알아지는 것은 어떤 논리에 휩싸이기에 앞서 법을 직접 읽어 바른 것에 대한 감, 중심이 잡혀있어야 가능하다. 그 중심과 감은 해설에서 얻기 어렵다. 왜냐하면 해설은 사람의 시각을 한번 걸친 것이라 편향된 것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미흡하다고 생각해도 직접 법을 읽고 알아보는 것이 좋다. 그리고 나서 해설을 접해야 취할지 말지에 대한 일말의 감이 생긴다. 그러니 부처님 법이든 무엇이든 법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사람의 말을 듣는 것에만 머물러 이리 저리 흔들릴 것이 아니라 법을 직접 읽고 사유하여 무엇이 바른가를 찾아야 한다.
당신은 어떤가. 주장된 어떤 논리를 따라 법을 공부하고 그 모양대로 법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봤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논리로 법을 공부하기 시작한다면 논리가 정해준 틀로만 법을 이해하게 된다. 부처님 가르침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어렵더라도 경전을 읽고 사유해보길 권한다. 물론 이 말이 법을 설하는 법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나 역시 윤홍식씨의 강의를 보고 도움을 받고 내 수행의 유익함으로 삼아왔다. 그런데 스스로 읽고 가르침을 사유해 왔기에 그 유익함을 주는 강의를 들으면서 어떤 부분은 경전의 가르침에 비춰 이상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수행이 깊어지면 이상하다는 생각을 넘어 왜 그것이 이상한지에 대해서 말할 수 있게 된다. 이것도 끝은 아닐 것이다. (나로서는 아직 먼 이야기지만) 모든 주장에서 결국 바른 법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 이것이 참으로 아는 사람의 경지 아닐까 싶다.
이미 올린 글과 중복되는 부분있어 사실 이 글은 올리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4원소님의 '생명카페가 약자'라는 글을 읽고 나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덕명이라는 분이 법화경 요점 특강(2)이라고 하여 육근청정 빈궁하천 사종사법 외도외서 말법시대에 대해 올린 글을 읽고 나서 생각이 변했다(이 글을 찾아 읽은 이유는 4원소님이 나에게 사종사법에 대해 말해달라고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순수한 의도가 아님을 알지만 말은 쉽게 던지면 안된다. 그 말로 인해 의도한 것과 다른 일들이 펼쳐지기도 한다. 오늘 덕명님의 주장을 읽고 이렇게 글을 올리고 있으니 말이다. 어찌되었든 사종사법으로 검색해보니 카페와 관련된 글만 올라왔고 그래서 그 중 그 강의를 열어보았다)
강의 내용을 읽으면서 법화경을 말하지만 많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4원소님은 '이것만이'를 그런 식으로 이해하는 내가 안타깝다고 했는데 강의를 읽으니 자신이 거짓된 말을 하고 있음을 스스로가 가장 잘 알 것같다는 생각 또한 들었다. 아니라면 아직 덕명님 가르침의 요점을 잘 모르는 것이리라. 그 카페를 소개하면서 공왕불 기도를 권하는 이들이 언급하는 표현들을 요점 특강에서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강의에서는 지금 절에 다니는 이들은 현생이 편해도 다음생은 빈궁하천(가난하고 천한 삶)의 삶을 타고 태어난다고 했는데 왜냐하면 다 지나간 시대의 수행이라 공덕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법화경 공왕불 기도 외에는 다 공덕이 없다고 거듭 거듭 주장하고 있었다.
나는 법화경을 믿는다. 그 법화경을 따르는 모든 이를 존중한다. 불성담긴 모든 이를 존중함이 마땅한데 법화경을 따르는 사람에 이르면 어떠하겠는가. 하지만 법을 말한다면 초보 불자의 시각에서도 법화경 구절을 그대로 들어 요점에서 하는 말들이 왜 이상한지를 하나 하나 이야기할 수 있다. 큰 흐름에서 법화경으로 수행하자는 것은 참 좋은 말이지만 그 주장을 하는 이면에 드리운 이해는 많이 왜곡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왜곡된 주장, 이해들이(그리 보인다) 사람들을 법화경의 가르침으로 이끌기 위한 방편이라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또 법을 받아지녔으니 그 법이 누구든지 결국은 성불의 길로 인도하리라 생각한다. 각자가 자신의 최선으로 법을 대할 뿐이니 다른 이의 불심을 훼손하지 않는다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법을 잘못 말하여 가는 길을 흐리는 것이 서로에게 유익하지 않다는 것과 법을 대함에 있어서 확신을 갖는 것도 좋지만 우리가 이해하는 바가 완전무결하지 않으므로 법을 대하든 사람들 대하든 겸손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들은 강의에서 느끼기에 법에 대한 해석을 이렇게 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오늘 하늘이 파랗네, 참 아름답다.'고 아버지가 말했다. 이 말을 듣고 아들이 말하길 '파란 하늘만 아름다운 것이고 다른 하늘은 다 의미없다고 아버지가 말했다'고 한다. 아들은 아버지의 유지를 제대로 받들고 있는가.
이런 이야기를 한도 끝도 없이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모습이 불자가 귀한 시간을 보낼 일은 아니지 않은가. 나는 기쁘지 않다. 앞에서 말했듯 불자로서의 나의 수행을 흐리고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면서 부처님 가르침으로 밝아지려는 불자의 눈을 흐리는 그 말들에 대해서 왜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지 경전의 구절을 들어 끊임없이 말할 수 있다. 결국 평행선을 달리겠지만. 왜냐하면 이미 시각이 고정되어 하나의 견고한 상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초보불자가 말하려니 참 기분이 미묘한데, 약은 다른 것이 없다. 당분간 경전을 그대로 읽어보라. 명호부르기를 하면서 꼭 경전을 그대로 읽어보라. 앞에 적었던 전도사가 말하길 시간이 지날수록 성경의 모든 말들이 그 틀로만 받아들여졌고 헤어나오기 어려웠다고 했다. 자신이 신학공부를 업으로 삼은 전도사였음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했다. 편향된 시각에 사로잡히는 것은 그 정도로 무서운 일이다.
불법을 말하면서 약하고 강한게 어디 있을까. 법의 본성이 평등하다. 자신들만이 법화경의 본질에 다가섰다고 주장하면서 이제와서 자신들이 약하다고 한다면 많이 이상한 일이 아닐까. 약하다고 생각하는 그 마음이 이상하다. 불자가 법을 받아지닐때 세상이 아무리 부정해도 내 안에 보물있으니 당당하며 기쁘다. 바르게 법을 받아지니고 말하는 불자를 온 법계가 기뻐하고 귀히 여기니 좋지 않을리가 없지 않은가. 가장 고귀하고 온 법계가 따라 기뻐하는 그 법을 내가 받아지니는데 어떻게 우리는 약하다고 말하는가. 또 인욕의 미덕은 바른 것을 지니고 그것을 위해 참아내는 것에 있다. 먼저 바른 것을 말하고 있는지 살피는게 필요하다. 바르지 않은 부분을 들어 누군가 다시 생각해보라고 말하는 것을 무시당한다고 말하고 참아낸다고 말하면 스스로 위안이 되는가. 그렇게 해서 얻을 유익이 무엇인가.
글을 쓰고 읽어보니 길기도 하고 너만 옳다는 것이냐고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싶어졌다. 그 물음에 답하자면 그렇지 않다. 스스로 자신만 옳다고 생각하면서 말로만 그러는 것은 아닌가 또 질문하고 싶어졌다. 글쎄다. 만약 그런 것이라면 마음을 돌이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닿아있는 법에 대한 이해가 지금 이것이며 나에게는 실상이지만, 법의 본성에 온전히 닿기 위해 끊임없이 나아가는 과정에 있으니 고정되어 있지 않다. 안다고 할 바도 없는데 옳다고 할 바가 있겠는가. 안다고 옳다고 주장할 만큼 법은 가볍지도 얕지도 않아 헤아리기 어렵다. 다만 나의 최선인 이 사유와 글 적음이 무명에서 조금 더 멀고 지혜에 조금 더 가깝기만을 발원할 뿐이다. 길게 적은 나의 글은 정답이 아니다. 그저 경전을 직접 읽고 부처님의 음성을 듣고자 노력하는 초보불자의 생각이니 그런 수준에서 읽는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귀한 시간 글을 열어줌에 감사하고 긴 글에 놀랐을텐데 읽어주니 감사하다. 초보라 핵심을 간결히 말할 능력이 없다. 스스로도 놀라고 있다. '이리 할 말이 많은가!'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 수행을 삼아야 하는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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