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나무묘법연화경, 나마삳다르마푼타리카수트라

향광장엄주주모니 2020. 4. 16. 19:42

법화경에서는 경전을 받아지니고 그것에 대해 공경, 찬탄하는 모습에 대한 문구들이 많이 나옵니다. 다시 말해 법화경 자체를 찬탄, 공경의 대상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 앞에 귀의한다는 의미의 나무를 붙이는 것이 또한 이상하지 않습니다. 특별한 주장을 하지 않는다면 다라니품에 나온 구절인 경의 이름만 받아지니는 행위가 되며 법화불자로서 충분히 할법한 행위, 공덕을 지어가는 행위가 됩니다. 물론 받아지닌다는 의미가 소리내어 외친다는 의미로 이어지는지, 그것을 포함하는지 모르지만, 그런 의도로 외친다고 할 때 아니라고 말할 이유는 없습니다. 법화경을 귀히 여기며 공경하는 마음으로 외치는 것이라면 충분히 받아지닌 행위로 볼 수 있을 겁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나무묘법연화경이라고 외치는 이들의 연유가 법화경을 살펴볼 때 어느정도 이해가능한 수준이라는 것을 표현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책의 제목이라고 해도 상관이 없는 일인거죠. 왜냐하면 책, 경전, 가르침 자체를 공경하여 받아지니는 일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장경을 읽는 불자들이 통상 나무지장보살하는데요, 나무지장경하기도 합니다. 가르침 그 자체에 대한 공경, 귀의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법으로 인해 모든 일이 일어나는데, 그 법에 귀의하는 행위가 얼마나 큰 일인지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법화경이 큰 이유가 법에 있구요, 그래서 법화불자를 폄훼하지 말라고 하는 겁니다. 그 법을 지니고 펼치는 사람이기에 그를 귀히 여기는 것입니다.


이와 비교하여 나마삳다르마푼타리카수트라를 살펴봅시다. 부처님 이름으로 부른다고 하면 그런가보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초 법화가르침을 명명한 것임을 부정할 수 없으니 그 명칭은 법화가르침인 것이 분명합니다. 가르침과 별도의 부처님이 우주에 계신다는 상을 지어가면 이름이 같을 뿐인 삳다르마푼타리카수트라가 두 개 있는 것과 같습니다. 사실 법이 곧 법신에 속하니 법이 부처님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것인데, 부처와 법(경전)을 분별하니 불필요한 분별의 폐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다시 정리해볼까요. 어떤 이들은 '나무묘법연화경'에 대하여 책제목을 불러서야 소용이 없지 않냐면서 폄하하듯 말하는데 조금 생각하면 이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왜냐하면 책제목을 부르는 이들은 그들의 이유가 있어 부르는 것이고 그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삳다르마푼타리카수트라를 부처 이름이라 주장하는 이들은 애초 이것이 가르침의 이름(책의 이름)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그것을 부처님이라고 해석하고 나서는 책과는 별도의 부처님인듯이 주장합니다. 두 개의 삳다르마푼타리카수트라인가요? 주장의 흐름을 살피면 일관성이 없기도 하고 매끄럽지 않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