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나무묘법연화경 연창에 대한 의문(2)(즉신성불)

향광장엄주주모니 2022. 8. 30. 16:47

앞선 글에 이어진 글입니다. 이번에는 즉신성불에 대해서입니다.

 

 

① 왜 법화경에서 밝히지 않으셨을까?

이들은 즉신성불을 이야기합니다. 이게 참 의아합니다. 법화경을 밝히신 여래께서 왜 중생을 아주 이롭게 하실 말씀을 하지 않으셨을까? 다시 말해서 말법 말법시 만 년의 기간에만 축복처럼 내려졌다는 약속인 '나무묘법연화경을 하면 성불한다'라는 것을 왜 법화경에 밝히지 않으셨을까요?

 

법화경에는 말법 말세시 후오백세를 언급하신 부분들이 분명 있습니다. 만약 만 년에만 한정되는 수행법이 있는 것이라면 말법 말세시 후오백세를 언급하시면서 조금이라도 이야기하시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미 법화경을 통해 부처님들의 감추어진 비밀을 밝히셨다고 거듭거듭 전하셨으니 말입니다. 자비로우신 부처님께서 중생을 위한 손쉬운 길을 밝히지 않을 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② 법화법문 수행으로 빠르게 부처되기

법화법문으로 우리는 무상정등각에 가까워집니다. 용녀는 바로 보살이 되고 부처가 되었습니다. 그가 말하길, "내가 신력을 타고났다면 이 구슬을 받을 자가 없었으리라"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자신이 특별했다면 그 누구보다 먼저 부처가 되었을 것이다', '평범한 나는 법화경으로 수행해서 이렇게 빠르게 부처가 되었다'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법문을 받아지닌 우리가 나무묘법연화경만을 연창해야 하는 이유가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용녀 이야기를 통해 법화경으로 수행하면 빠르게 부처가 될 수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무엇보다 빠르겠지요. 얼마나 빠를지는 저도 모릅니다. 

 

 

③ 근기따라 나오는 법문, 그래도 모두를 위한 법문

이들은 사람들이 근기가 하열해도 나무묘법연화경 연창만 하면 성불하는 것인데 사람들이 믿지 못한다고 합니다. 거듭 말하지만 정말 그런 것이라면 이런 부분은 부처님의 가르침인 경전으로 남겨져 있을 것입니다. 법화경의 비밀 부록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이 마지막으로 이 가르침을 부촉하시는 순간에도 '이 법이 자라서 널리 퍼지게 하라', '지니고 읽고 깨닫고 가르치고 홍포하고 또 일체 중생에게 설하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잘 교화하여 이 법을 받도록 하라'라고 당부하시죠. 부처님의 가르침은 아주 일관되어 있습니다. 

 

법화경을 통틀어 이 법문은 아무때나 설하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법을 폄훼함은 지독한 악업이 되므로 오히려 법을 받아 지닐 근기가 된 이들에게 전하라고 하셨지요. 마땅히 부처님이 거듭 설명하셨듯이 설법의 대상이 가려져야 하고 설법의 적절한 시기까지 성숙함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모든 이들을 위해 펼쳐야 하는 법문이 또한 법화법문입니다. 그래서 촉루품(종품)에서 부처님은 믿지 않는 사람들을 잘 교화하여 법을 받도록 하라고 덧붙이십니다. 법화경을 펴는 것, 믿지 않는 사람들을 잘 교화하여 받도록 하는 것이 부처의 은혜를 갚는 것이라고요.

 

나무묘법연화경하면 성불한다는 주장에 마음을 연다는 것은 그 정도의 근기가 있음을 말해줍니다. 그 주장의 진위 여부를 떠나서 그 정도의 근기라면 이 사람은 분명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부처님의 가르침에 스스로 정진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부처님이 원하는 바라고 생각합니다. 

 

믿든 안믿든 그저 소리 내기만 하면 된다고 하는데 모든 것이 마음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믿는다면 믿는 마음이 어찌 중요하지 않은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괴기스러운 불교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음은 기술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인연의 시작을 위해서 조금 무리수를 둘 수 있겠지만 말압니다.

 

 

④ 우리가 되려는 부처는 무엇? 즉신성불은 무엇?

즉신성불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법화경에서 우리가 되어야 하는 부처는 석가모니 부처님과 같이 일체지자의 지혜와 승자들만의 십력을 성취한 삼십이상을 갖춘 부처입니다. 그런데 지금 나무묘법연화경을 하여 이루는 즉신성불은 얼마나 그런 성불에 가깝습니까? 이 부분에 의문이 있습니다.

 

솔직히 즉신성불 용어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 못하므로 지식백과를 확인해보았습니다. 

 

즉신보리(卽身菩提) ∙ 현신성불(現身成佛)ㆍ현생성불(現生成佛)이라고도 한다. 보리심(菩提心)을 일으켜 삼대아승지겁(三大阿僧祗劫)의 오랜 수행과정을 거쳐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몸 그대로 바로 불(佛)이 되는 것. 승불교(乘佛敎)에선 심(心)과 불(佛)과 중생, 이 세 가지가 별개가 아니라 그 본성은 다 같은 진여(眞如)이므로 미(迷)와 오범부(悟凡夫)와 성자(聖者)라는 구별은 본래의 자리에서는 할 수 없다고 한다. 이것을 구체적으로 현실인 육신에 적응시켜 말한 것이 즉신성불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즉신성불 [卽身成佛] (종교학대사전, 1998. 8. 20.)

 

잘 읽어보셨나요? 이런 것이 즉신성불이라고 합니다. 다른 해설도 있는데 부처와 자신을 일체화시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제 경험이 얼마나 즉신성불인지 모르지만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고 염불하면서 어느 정도 즉신성불인 순간이 있는 것도 같습니다.

 

나는 중생일까요? 부처일까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모든 중생에게는 불성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이대로 부처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수준이 천차만별이겠지만 즉신성불을 이루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마음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에게는 너무 먼 일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