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무리 글을 적어볼까 합니다. 내용이 길어지다 보니 전체 글이 좀 난해한가 싶기도 하네요. 중간 중간 번호를 매겨 제 의문이 생기는 지점에 대해 나름 정리해서 적어보려고 했는데 쉽지 않습니다.
평범한 불자인 저로서는 나무묘법연화경만 연창하면 성불한다는 주장에 대하여 시비를 논할 수 없습니다. 다만 법화경을 받아지녀 수행하는 행위를 뒤로 미루면서까지 나무묘법연화경 연창만을 중시하는 논조가 법화경을 읽는 저로서는 적절하다고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누군가 말합니다. 당신은 전생에 공덕이 있어서 경도 읽고 할 수 있지만, 그런 복이 없어서 삶이 힘든 나는 바른 법을 읽을 여유도 되지 않으며 나무묘법연화경으로만 좋아지는 것을 느낀다고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인연 근기가 다르니 각자에게 감응이 일어나는 것도 다 다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없더라도 부처님 수행은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단지 씻어야 할 업이 많아서 더디 느껴지는 것으로 이해함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미타불을 부르면 불광이 일어나지만 보이지 않는 이들은 믿지 않습니다. 그래도 일어나는 것은 일어나는 것입니다.
또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것을 과도하게 믿으면 독이 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것에 심취되어 스스로 속아 넘어갈 수도 있고 이상한 길로 빠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결국 안전하고 행복하고 자유롭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기도가 그럴만한 기도가 되기 위해서는 바르게 판단하는 힘이 길러져야 합니다.
바른 법을 알아야 선업을 쌓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무엇이 바른 것인지 모르는데 어떻게 좋은 것으로 잘 쌓아갈 수 있을까요? 각자 자신이 인연 된 수행에서 지극하게 나아가서 무언가를 읽을 정도가 되면 필히 부처님이 전하신 불법을 배우는 것이 좋습니다.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지속하는 것에서 장애가 벗겨지고 복이 일어납니다. 지장경을 읽고 법화경을 읽는 것이 저도 쉽지 않았습니다. 오랜 시간 많이 읽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낙담했죠. 하지만 결국 제 내면이 변하고 있음을 알아차렸고 내 삶이 변화되었음을 알려주는 메세지를 받고서 안심에 머물 수 있었습니다.
법화경에 악업을 지은 이가 받는 과보에 대해서 표현합니다. 불구가 되거나 법을 알아듣지 못할 상태이거나 일을 해도 벌이가 적거나 좋은 의사를 만나도 치료되지 않는다 등의 여러 가지 상황이 나열되지요. 확대해본다면 우리 삶이 어려운 것은 자신은 지은 업의 결과입니다. 쉬운 것을 바라는 것 자체가 어찌 보면 적절하지 않을 수 있지요.
그럼에도 자비로운 불보살들께서 그런 악업을 벗어나 선업을 쌓을 다양한 방도를 알려주시고 크게 겪을 바를 작게 겪도록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그러니 믿고 감사하는 것이 맞습니다.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이 법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부처님의 법을 가벼이 여기는 것은 경계해야 합니다. 그것이 법화경이 된다면 더욱 심각하게 경계해야 합니다.
나는 아직 나무묘법연화경 연창에 대해 주장하는 바를 법화경 속에서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면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또 그런 이유로 부처님의 가르침과 대치되어 법을 향해 나아가는 길에 해를 끼친다면 나무묘법연화경만이 살 길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일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모든 것이 그러하고 그러한 것입니다. 심각해질 이유가 사실은 없습니다. 다만 불성을 따라 우리가 길을 더 잘 나아갈 수 있게 되기를 발원합니다. 정말 그들의 주장처럼 의미있는 것이라면 점차 알아지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
늘 머물러 있는 것으로 생각해서 창피했는데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합니다. 머물러 있었다고 여긴 그 시간마저도 의미있어서 오늘의 저를 만들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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