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법화경을 읽으면서 새로이 드는 생각이 있었다. 잠시 그것을 적어보려 한다.
법을 배우는 수행자들이 자신의 근기에 따라 법을 받아들임이 다르기에 각자 서 있는 지점이 달라도 결국은 하나로 흘러간다는 생각을 예전부터 해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해한 큰 흐름과 전혀 다른 이해를 주장하는 글을 보면 사실 '그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겉으로 법화경을 내세우지만 '무언가 잘못되었다'든지 '이상하다'는 것이 내 시각이었다.
그런데 어제 법화경을 받아지니고 알리고 홍포하는 일에 대한 구절들을 쭉 읽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들도 자기 나름대로 법화경을 받아지니고 알리는 일을 꾸준히 해오고 있는 것이지 않은가.' 물론 그 받아지님과 알리는 일들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한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어제는 그 구절들이 나에게 그런 것이지 않은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 순간 그들에 대하여 나도 모르게 가졌을 평소의 부정적인 시각이 사라졌다. 필요한 분별이 있다는 것을, 그것이 필요한 시기가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지금의 나에게는 다른 이들에 대한 시비를 가리는 마음에서 떠나는 일이 더 급하고 중한 일이다. 그것으로 법화경을 받아들이는 마음에 올가미가 씌워져 있으며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경전에 대한 이해와 해석이 다를 수 있으나 그에 대해 시비를 성급히 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또 해석이 다를 수 있으나 우리 모두는 나름의 방식으로 노력하는 것이며 그것으로 공덕을 쌓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모든 일들이 최상의 일이 되도록 순간 순간 좋은 뜻으로 돌이키고 불성을 믿고 맡기는 일이 필요할 것 같다.
수행의 과정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다 다르다. 과정에 충실하고자 하는 이에게는 자신에게 걸맞는 흐름 속으로 들어갈 기회가 온다. 우리의 불성이 그리 이끈다. 어제 법화경을 읽다가 든 새로운 생각 하나는 이제는 이렇게 생각하는 마음 속으로 들 때라는 메세지가 아닐지. 이런 시각이 견고해지면 나는 더 큰 자유로움 속에서 세상을 마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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