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을 보면 특정한 사찰에 가거나 스님 대함을 불자의 큰 수행이나 복으로 삼기도 한다.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모두가 법에 대한 근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근기라 하면 상중하를 나누는 것으로 느낄 수 있는데, 그것보다는 사람의 성품, 성향, 능력 등이 다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는 특정한 사찰을 찾아 예경하고 기도함으로 공덕을 쌓고 누군가는 승복입은 출가승, 또는 특정한 선지식을 존중하고 법을 들음으로 공덕을 쌓기도 한다. 그것에 문제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어떤 이를 보면 마음이 좀 답답해진다. 집착이라 할지, 치우친 마음이라 할지 모르겠으나 그런 마음이 느껴지면 좀 편안하지 않다. 결국 집착하는 마음은 탐진치와 가까운 것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이것이 아니면 안된다는 마음은 집착이 되어 심성을 흐리게 한다. 스스로 속박의 굴레를 만들어 씌우고 씌우기를 반복하여 강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은 살펴봤으면 좋겠다. 정말 그것이 아니면 안되는 것인지, 법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해서 빠져있는 착각은 아닌지를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가끔은 그런 집착에서 벗어나기 위해 마음이 원하는 바를 거슬려보기도 하면서 법의 논리를 바탕으로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괜찮을 수 있고 좋을 수 있다는 것을 경험시키고 깨닫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가 하는 수행의 모습이 집착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아주 미묘한 문제이리라 생각하지만 법에도 집착하지 말라 했으니 하물며 법 아닌 무엇에 집착을 해야 한다는 말인가. 사찰, 스님, 선지식, 그 무엇이 되었든 법을 배우고 정진하는 것과 그에 대한 집착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공경, 찬탄, 믿음, 바램 등 그 무엇으로 가리더라도 어리석은 집착에 너무 오래 머물지 않았으면 좋겠다. 법을 배워나간다면 내 마음의 자리가 어디에 머물러 있는지 알 날들이 있지 않을까. 내가 적는 이 글들에 나도 자유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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