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이 탁하죠. 사람들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그렇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사찰도 그러한 것 같습니다. 저는 그렇게 느낍니다. 스님네들의 법문을 통해 점차 신심이 생동하지 않습니다. 또 '뭔가 문제가 있다'라고 생각되는 지점에 대해서 전과 다르게 이야기하는 이들이 없어지고 자신들끼리 함께 잘 어우러져 갑니다.
어쩌면 사는 것이 바빠서 그런 관심을 갖는 것조차 힘든 일이 된 것일 수 있겠지요.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스스로 이야기하고 수용하면서 서로 간에 미소 지으며 각자 자기 마음의 부처님을 잘 모시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저와 다르게 넓고 깊어져서 '그런 것쯤이야 전혀 문제 되지 않는' 경지의 사람들이 많아진 것일 수도 있습니다.
법화경을 읽다가 천태종과 인연이 되었고(천태종 소의경전이 법화경입니다) 사찰에서 시간을 지내다 보니 합창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속해야 할까에 대한 고민이 새로운 것은 것은 아니지만, 6년 차가 된 지금 이 순간, 그만둘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그 어느 때보다 깊습니다. 제가 너무 예민할 건가 싶기도 하지만, 함께 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니까요.
사실 따지고 보면 천태종 사찰을 다니면서 이상하다고 느낄 때가 많았습니다. 법당에 석가모니 불상과 대조사상이 있는데 대조사상에 먼저 인사하는 신자가 꽤 있더군요. 부처님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상했지만(우리는 모두 부처이니 그렇게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스스로 이해시켰습니다) 엄연히 석가모니 불상이 있음에도 인사의 순서가 그런 것은 많이 이상했습니다. 또 부처님에게 삼배하라고 하면 석가모니상에 3배, 대조사상에 3배 합니다.
그런데 행사 중에 하는 염불을 보면 나무석가모니불, 나무관세음보살, 나무상월원각대조사라고 합니다. 그 누구도 나무상월원각대조사, 나무석가모니불, 나무관세음보살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그게 법에 맞기 때문일 것입니다. 마음에 중심이 되는 신앙의 대상이 있다고 해도 지킬 예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알게 함이 스님네들의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신도들을 보면 잘 모르겠습니다.
언젠가는 장례식장에서 신도들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시신 매장할 산을 샀다고, 아는 사람들은 화장을 안 한다고요. 궁금해하는 저에게 스님이 한 말이라고 합니다. 아버지를 화장한 저로서는 그 순간 마음이 많이 무거워졌습니다. 부처님도 화장한 마당에 무슨 소리인가라고 속으로 항변하면서도 찝찝하고 불편한 마음이 됐습니다.
며칠 전 관련 동영상을 찾아보았는데 누군가 대조사님 증명이라고 하면서 그 이유를 쭉 설명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동영상을 보면서 저는 오히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조사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가 있기는 하겠지만, 결국 불자라면 부처님이 가리키는 최종 목적지에 관심을 갖는 게 최상이라고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지기 받아 세계 지도자 되는 것이 불교의 종착점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또 땅의 기운도 좋지만 우주, 부처님 기운이 최상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불법을 만나 자비를 배웠고 불법을 만나 자유로워졌습니다. 그런데 천태 사찰을 다니면서 스님에게 들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신도들 속에서 저는 분별심으로 오히려 마음이 혼란해지는 경험을 했던 것 같아요. 물론 분별이 필요한 순간이 있겠지만 말입니다. 개인 생각이지만, 분별하게 하고 마음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좋은 가르침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그렇게 말하더군요. 절을 떠난 사람들이 다 끝이 좋지 않다고. 그런데 저는 그렇게 이해하지 않습니다. 절을 떠나서 철퇴 맞는 것이 아니라, 그가 바른 법을 떠나고 신구의가 바르지 않기 때문에 좋지 않은 모양새가 되는 것입니다. 만약 제 형편이 좋아지지 않는다면 바른 법을 멀리하고 신구의가 청정하지 않기 때문이지, 천태 사찰을 떠났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늘 새벽 꿈을 꿨습니다. 제가 예전에 장애인 시설에서 함께 일했던, 정말 인간 같지 않았던 교사가 교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나 보란 듯이 그 얼굴이 아주 좋아 보였는데, 교실 뒤쪽에는 엎드려서 벌 받는 아이가 둘 있었습니다. 아무튼 그곳에 가르치러 간 것 같기는 한데 상대의 속 편한 얼굴과 적절하지 않은 체벌 상황을 보면서 잠을 깼습니다.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꿈의 의미를. 그런데 지금 제 상황을 비추어주는 것 같긴 합니다. 교실은 사찰이나 합창단일 것이고, 교사는 뭔가를 열심히 하지만 제 마음이 이상하다고 여기는 무리, 아이들은 불법의 공덕을 얻기 위해 모여든 존재들일 겁니다. 제가 속해 있는 무리는 꿈속에서의 체벌과 같이 바르지 않은 행위를 드러내놓고 하면서 편안하고 당당합니다.
꿈을 깨고 보니 내가 왜 그곳에 갔는지 궁금했어요. 어쩌면 좋지 않음을 알면서도 무리 속에 속함으로써 얻게 되는 나름의 이익을 취하고픈 걸까 싶었습니다. 어리석음과 탐욕, 집착이겠지요. 굳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 그곳에 간 이유를 그럴듯하게 찾자면 체벌받는 아이들을 위함일 수 있습니다. 나라도 정신 차리면 아이들에게 좀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죠.
장애인 시설 관두고 꾸준한 돈벌이가 없어졌다는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조차 별 문제가 아닐 정도로 시설의 비이성적인 사람들과 단절되었다는 사실은 저에게 편안함을 안겨주었습니다. 끝마치지 않은 숙제라면 다른 곳에서라도 겪어야 할 일이 있을 것인데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편안하네요. 이미 충분히 겪은 것일지도요.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거죠.
아무튼 청정한 곳에서 청정한 음성공양을 올리고 싶다는 원으로 모든 것들이 정리되기를 발원했습니다.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지만, 그런 뜻을 세웠으니 그 뜻을 계기로 새로운 장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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