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생활 면면이 수행이지만

향광장엄주주모니 2018. 11. 9. 10:17

어떤 분이 수행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혼자서 조용히 경전 읽고 가만히 앉아서 수행한다고 수행이 아니다. 생활수행이 되어야 한다'고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는 충분히 짐작되었다. 불교신자라고 하면서 실제 생활에서 전혀 부처의 자비와 지혜를 보이지 않는 많은 이들을 마주하는 현실이 답답하셨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이 너무 나갔다고 생각한다. 꼭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균형잡힌 말이 아니라고 본다. 물론 내 주변에도 10년, 20년 기도수행했다는데, 그것도 남들이 다 인정할만큼 했다는데 마음씀이 아이같은 사람이 있다. 가끔 그 기도했다는 것에 의구심을 느끼지도 하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변하겠지, 예전보다 나아졌겠지 한다. 부처님 앞에 올리는 기도니 말이다.


생활이 수행이 되려면 그에 대한 자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전을 읽어 바른 것이 무엇인가 일깨우게 된다. 염불이나 여러 가지 수행법을 통해 고요해짐 속에서 나에 대한 반추가 일어난다. 무엇이 바른가, 좋은가에 대한 생각들이 정리되고 명확해진다. 그런 과정을 거쳐 생각이 명확해지더라도 생활 속에서는 여전히 탐진치에 물든 습으로 인해 아는대로 실천하는 것이 쉽지 않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아는대로 실천해나가는 과정, 그 변화하는 과정이 곧 수행이 된다.

그때 말할 수 있다. 생활 면면이 수행이라고.


바르게 행하려면 바르게 알아야 한다. 바른 앎은 판단은 어디에서 오는가? 독경에서 오고, 염불에서 오고, 다라니에서 온다. 모든 수행이 일심으로 치달을 때 얻어지는 고요함에서 온다. 그 앎을 바탕으로 한발 한발 걸어가는 것이 또한 수행이다. 바르게 알고 그 앎을 나와 일치시켜 나가는 것이 수행일진대,  알고 있음에도 실천 못한다고 알아가는 과정을 경시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빼먹어서는 안되는 과정이다. 알았는데 실천못하는 이들은 그에 맞게 일깨울 일이다.


얼마나 많은가? 불법을 머리로 배우고 그것에 만족한 채 모든 것을 다 이룬듯이 행세하는 사람들. 말로는 그렇게 전문가일 수가 없다. 어디 남의 이야기만 되겠는가. 자신의 이야기, 나의 이야기일 수 있다. 그러니 내가 바르게 알아서 실천하는 것에 마음을 내고 남들이 바르게 알고 실천할 수 있도록 그 형편에 맞게 이끌어줘야 하지 않을까.


생활 면면이 수행이다. 그것은 바른 앎을 토대로 이루어진다. 모두 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