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선화상인의 "회광반조하며 수행하라"

향광장엄주주모니 2020. 3. 25. 15:35

아비라카페에서 읽은 글입니다. 선화상인의 법문이라는데, 좋아서 옮겨봅니다.


회광반조(廻光返照)하며 수행하라

수행은 진지하고 착실하게 닦아 나가야하며, 지엽적으로 공부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로는 보살도를 행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남들에게 공연을 보여주는 것처럼 합니다.
무엇을 하든지간에 일거일동, 말 한마디 행동하나를 모두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할 뿐, 자신에게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회광반조(廻光返照)하여야 할 것이며, 남들에게 보여주려고 관세음보살을 염한다면 빨리 고쳐야 할 것입니다.
무릇 모든 수행을 남에게 보여 주려는 것은 바로 '근본을 버리고 지말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근본을 잊어버리고 지엽적인 것을 추구하면 좋은 점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수행은 자신에게 보여 주어야 하며, 자기가(자신의 수행을) 능히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회광반조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반드시 기억해야합니다.
회광반조해야 하며, 이것은 빛을 밖으로 비추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빛을 밖으로 비추면 다른 사람은 나를 수행 오래한 사람으로 인식하겠지만, 밖으로 비춘 빛은 곧 없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왜냐하면 그대의 빛은 아직 다 충분히 갖추어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대의 수행이 원만한 경지에 이르지 못하여 빛의 강도가 매우 작으며, 시련을 견디지 못합니다.
빛이 원만하여 흠결이 없어지기를 기다려 방광(放光)을 해도 늦지 않습니다.
지금은 수행하는 단계이므로  빛을 밖으로 내놓아서는 안됩니다.
수행은 마치 학교에서 공부를 배우는 것과 같습니다.
먼저 초등학교를 마치고, 다음에 중등학교에서 배운 후 대학에서 공부하고 나서 대학원에 들어가야 비로소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수행도 이와같이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야 하며, 지름길을 찾아서는 안됩니다.


중간에 글자 띄어쓰기와 오자로 생각되는 부분을 고쳤습니다.

(빛의 광도 → 빛의 강도, 없어지기를 기다려도 방광을 해도 → 없어지기를 기다려 방광을 해도)


자신의 수행을 자신이 볼 수 있는 것, 이것을 회광반조라고 합니다. 수행을 통해 원만해지고 충분히 갖추어졌을 때까지는 드러내지 않는 것(아마도 밖으로 향해 알게 모르게 드러내는 것에 치중하는 것을 말함 같은데, 잘모르겠네요), 단계를 잘 디디며 정진해가는 것, 이것을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음...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네요.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이 잘못된 흐름을 타면 밖으로 향하는 거짓 수행이 되거나, 얄팍한 수행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 수행의 과정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시니 불성의 지혜와 자비, 그 방편은 늘 놀랍고 감사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면 제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것도 같습니다. 적절하게 표현하기 어려운데, 선화상인이 중하게 말씀하시는 부분에 대하여 이미 마음에 담아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글을 쓰면서도 쥐어짜는 것인지, 비틀어진 것인지, 그저 흘러넘치는 것인지, 사유의 과정 중에 있는 것인지가 다름을 알고 있으며 수행의 모든 일이 마치 살아있는 현상과도 같아서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초등학생의 힘, 중학생의 힘이 다름을 알고 그로 인해 불성에 견고함이 다르며 주변으로 펼쳐지는 힘이 다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회광반조하여 나를 알아차리고 단계단계 충실히 수행해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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