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연히 '순수정토사상의 입장에서 법화경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한 스님의 답변글을 읽게 되었다. 솔직히 다는 읽지 않았고 더 읽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래도 무엇을 말함인지는 대략 알 수 있었다. 물론 나의 착각일 수 있다. 아무튼 법화경을 수지하였기에 조금은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일 수 있지만, 법화경을 수지하였기에 다른 이들에게 잘못된 이해의 문을 열어주는 것은 두려운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스님 주장의 핵심이라 할 구절을 들어 나의 이해를 적어보려 한다. 늘 그렇듯 참고만 하시라 당부한다.
법화경에서는 단지 성문·연각·보살들의 성불만을 말씀하셨을 뿐, 탐·진·치가 있는 육도의 범부중생들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무량수경에서는 비단 성문·연각·보살이 성불을 할 수 있을 뿐더러 인간과 천상의 중생, 아울러 삼악도의 중생조차 전부 그들에게 진실한 이익을 베풀어 성불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이 법문은 오승(五乘:사람·천인·성문·연각·보살)이 함께 들어가는 법문입니다.
먼저 법화경은 부처님들이 마지막으로 설하는 가장 깊은 비밀법장이라는 사실을 짚고 넘어가야겠다.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당신이 어떤 길을 통해 부처가 되는 것에 이르든, 그 길이 정말 부처되는 길이라면 자신이 알아차리든 못알아차리든 법화법문에 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이야기이다. 만약 법화법문을 듣지 못했다면 아직 성불의 길이 요원하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이야기이다.
법화경은 부처가 되는 것에 대한 비밀한 이야기를 적어놓은 가르침이다. 그것은 편협하지 않으며 모든 중생이 부처되게 이끌고자 하는 모든 부처님들의 출세목적을 밝히고 있다. 각각의 다양한 법들이 상이한 중생 근기에 따른 것일 뿐이며 그렇게 이어진 법들이 결국은 하나의 승, 다시 말해 일불승으로 중생을 이끈다고 언급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부처님들의 목적이 하나이며 이분들의 법설함이 이 하나의 목적으로 귀결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무슨 말인지 이해되는가. 법화경은 단순히 성문, 연각, 보살만의 성불을 말하는 경이 아니다. 부처님들의 본원을 밝히고 있으며 그 원을 실현하는 것에 대해 밝히고 있다. 내가 부르는 아미타부처님의 법도 그런 큰 흐름 속에서 이해해야 마땅하다. 동일한 목적을 위해 출현하신 부처님이시지 않은가. 단지 아미타부처님이 장엄한 공덕과 세우신 원이 있기에 그것에 힘입어 중생이 부처님을 믿고 부르면 극락정토에 나게 되어 그곳에서 성불을 향한 수행을 해나가는 것이 다른 것이다. 따라서 법화경이 못한 무언가가 가능하다는 것으로 중생의 이해를 가져간다면 그것은 분명 오도(誤導)에 가까워진다.
다시 잘 생각해보라. 성문·연각·보살들의 성불만을 말씀하셨을 뿐, 탐·진·치가 있는 육도의 범부중생들은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은 누구의 말이며 누구의 이해인가. 법화경 자체가 하근기의 재량으로는 바르게 받아지니기 어렵기에 근기가 높아진 후에 밝힌다고 하신 것을 착각하면 안된다. 그 근기 높이는 과정이 우리가 배우고 드는 모든 수행, 우리의 근기에 맞게 설하시는 모든 부처님의 법이 될 수 있다. 그 중의 하나로서 염불과 극락왕생을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다. 부처님들의 성불서원은 모든 중생을 향한다는 것을 놓쳐서는 안된다.
말의 표현은, 특히 법에 대한 표현은 정말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역시 모르는 사이에 잘못된 이해를 하고 잘못된 표현을 할 수 있다. 예전에 '당신이 적은 글에 확신이 없는가'라고 누군가 말한 적이 있는데 지금은 확신이 있더라도 끊임없이 근기에 따라 더 정확하고 바른 이해에 이를 수 있다는 것에 의심이 없다. 그러니 지금의 확신을 주장하더라도 그것은 열려있으며 겸손해야만 하는 일이다. 오늘 내가 적은 이해들이 바르지 않다면 빠른 시간에 바른 이해로 돌이켜지기를 바라며 글을 읽는 누구라도 바르지 않은 것에 마음닿지 않기를 기원한다. 적다보니 하고픈 말이 많은지 너무 중구난방이 된 듯하다.
모든 법의 비는 평등하게 내린다. 부처님들은 한없이 자비로우며 그것은 모두에게 평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