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드러낸 허물을 욕하는 것
별로 효과적이지 않다. 하나의 목적을 위해 글을 적는 것은 아니나, 수행을 위함이다. 거짓이면 얻을 바가 없는 수행을 글로도 하고 있는 것인데, 이제 내가 작든 크든 알아차린 바를 드러내어 한 발 나아가려는 순간 너는 이러하다고 욕하고 조롱하는 것은 악행이며 바보같다고 생각한다. 만약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죽는다면 무엇이 남을까?
2. 글을 마음대로 이해하는 것
많이 곤란하다. 없는 말을 지어내거나 있는 말을 비트는 것. 한 두번 대응하다가 상대가 어떠한지 알아차리게 될 때 더 이상의 대응이 필요없으리라 생각들어 답하지 않을 때도 있다. 자기에게 알맞은 글들이 있다. 이해가 안되든 입맛에 안맞든 자신에게 유익함으로 돌리지 못할 처지라면 지금 읽지 않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3. 개인교류를 글로 적은 이유
여러 이유가 있다. 그 중 하나는 그 복잡한 심경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경험이 너무 강렬했는지 글과 생각이 넘쳐 경전을 읽을 수 없었다. 두번째는 상대의 입장에 대한 내 입장을 밝히고 싶었다. 내 글을 읽을지 어떨지 모를 일이지만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 생각이 이러하다는 것을 밝히고 싶었다. 끝으로 그런 생각을 펼쳐 누군가에게는 참고되기를 바랬다. 그 일이 나로서는 법을 나누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런 이유있음에도 고민했었다. 상대의 입장과 다른 입장을 밝히는 글이라 누구라도 자신의 일이 되면 기분 나쁠 확률이 더 클테니.
4. 글을 적고 올리는 것
깊은 고민이 있다.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의 비난을 받기도 하고 그것으로 시간과 마음을 쓰는 것이 피곤하다. 문제 있음과 없음이 외부의 평가에 전적으로 있지 않다고 생각하고 더욱이 문제 제기하는 이가 몇 명 되지 않지만 피곤할 때가 있다. 굳이 올릴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과연 유익이 얼마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있다. 내 글로 참고가 된다는 이도 있지만, 게으름 없이, 지치지 않고 법을 나눈다는 경전의 가르침을 새겨왔지만 조금은 지친 것도 같다.
5. 일상을 적는 것, 남 얘기 하는 것
이것으로 누군가 비판을 했다. 왜 남 얘기를 하냐고. 뭐, 맞는 말이다. 그런데 남을 비난하고 자신을 내세운다고 하면 내 글에서 얻을 바가 없으니 스스로를 위해 읽지 말라고 하고 싶다. 그리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삶을 통해서 알아지는 깨침을 표현하고 싶었을 뿐이다. 남의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결국 내 이야기이고 남의 모습을 거론하지만 결국 내 모습을 돌이키는 일이다. 배운 법이 실제 어떻게 드러나는지 생활에서 깨친다. 그것을 나누고 싶을 뿐 다른 의도는 없다. 내가 잘났다고?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6. 나아가고 싶은 마음
하나의 경계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하는 짓들이 그러하다. 처음보다 많이 나왔지만 이제 전보다 더 크고 짙은 경계에 부딫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가 될지 모를 일이지만 이 경계 또한 벗어날 것이다. 고민과 좌절의 순간들을 지혜롭게 보내어 벗어날 것이다. 좋은 뜻을 세우고 그대로 실천하려 몸부림치며 쌓이고 쌓이는 선업의 힘으로 불성의 이끄심으로 또 한 걸음 크게 내딪게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금 내 곁에서 많은 어려움을 자아냈고 자아내는 이들이 결국은 나를 가르쳤고 가르쳐 더 나아가게 한다. 그러니 한편으로 떠나고 싶으나 한편으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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