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공왕불, 바른 법이 무엇인가.

향광장엄주주모니 2020. 2. 4. 16:15

2019년 2월 적었던 나의 글, '공왕불 기도에 대한 이런 주장'에  공왕불 기도하는 이가 댓글을 달았습니다. 어제는 근무중이라 정말 간단하게 글을 적었는데 이제 하나씩 읽고 나의 생각을 적어보려 합니다. 사실 이런 글을 읽고 적는 것이 큰 의미가 있을까 싶기는 하네요. 이미 자신이 신봉하는 것으로 모든 시각이 고정되어 있는데 당신이 보는 하늘이 파랗고 내가 보는 하늘이 파랗다고 한들 받아들일까요? 그래도 내 글에 의견을 보이니 그에 대한 내 의견을 적어보겠습니다. 먼저 뺑뺑이라는 분이 이리 적었습니다.


" 바른 법에 의지해서 고통스럽다면 반성하고 바른 마음, 바른 행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찾아 실천해가는 것으로 업보를 바꿀 수 있습니다."

위의 문장은 공왕불교에서 항상 하는말입니다. 천태대사 묘락대사도 실천을 강요하셨습니다. 공왕불교에 관심이 없으므로 모르는게 당연하지요.


업보라는것은 단순히 볼 문제가 아닙니다. 악업으로 인해 바른법을 찾지못하고  악업으로 인해 바른법을 들어도 이해하지도 못하니  구제하기 굉장히 힘든것입니다. 그래서 업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부처님께서 법화경을 설하셨어요. 그래서 누구나 의심하지않고 기도만 하게되면 부처의 지혜가 나타나 바른법을 이해하고 실천을 할수있게 되는것입니다. 바른법도 이해를 못하는데 실천을 어찌 할 수 있겠습니까

공왕불신자분들의 블로그와 유튜브와 생명치료희망쉼터 카페글을 일부만 봐서는 절대로 공왕불교의 교리를 이해할수없습니다. 그래서 계속 공부해라 하는것입니다.


자, 이제 제 생각을 적어보겠습니다. 먼저 바른 법에 의지해서 자신이 마주한 고통을 돌아보며 반성하고 바른 마음, 행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실천해가는 것, 그것이 업보를 바꾼다는 것은 일반적인 부처님 가르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쉽게 찾아볼 수 있지요. 업의 과보는 많은 경전에서 나오는 것이구요. 그런데 내가 공왕불기도에 대해서 의문을 갖는 것은 그런 당연한 논리에 있지 않습니다. 그런 당연직한 논리들을 가지고 논점을 흐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법화경을 공부하는 이는 법화경으로 족합니다. 법을 전해주고픈 대상이 이해가 낮다고 생각하여 누군가 달리 가르친다 칩시다. 잠시는 괜찮지만 그런 가르침이 본질을 흐리기 시작하면 더 이상 본 가르침이 아닙니다. 다른 이야기가 된다는 거예요. 바른 법, 바른 이해까지 갈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법화경을 그대로 받아지니면 그것이 곧 바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근기따라 다른 이해가 펼쳐질 수 있지만 과정 중에서 얻게 되는 답이며 흐린 것과는 다릅니다. 여러가지 당연직한 논리를 내세우며 내 말이 맞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법화경의 가르침을 흐리면 그것은 더 이상 법화경이기 어렵습니다. 그게 핵심입니다.


내가 유튜브에서 본 것은 덕명이라는 이가 자신의 가르침을 총정리하여 가르친 시리즈 중의 하나였습니다. 쉽게 말해 총정리편 중 1편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 전에 기도자들의 주장을 보았기에 새롭지 않았지만 아무튼 총정리편을 보면서 그들의 주장이 덕명의 가르침에서 나온 것임을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어디에 있을까요? 일부를 봐서 이해를 못한다는 나인가요? 공왕불에 관심이 없어서 모르는게 아니라 알아보니 바른 것과 떠난 듯 하여 가까이 하지 않는 것입니다. 좋은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더 이상 나아가지 않는 것이니, 왜 더 가보지 않았는가를 말하면 의미없죠. 이 길이 왜 아닌가에 대해서 나는 많은 의문을 제시하였고 그에 대해서 적절한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묻는 내가 문제일까요? 아닙니다. 답하지 못하는 이들의 문제겠지요.


아예 알지 못하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미묘하게 틀어진 시각으로 아는 것입니다. 그것을 벗어나기가 너무 어려운 일이거든요. 더 이상 파란 하늘이 파란 하늘로 보이지 않습니다. 법화경은 업보, 숙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업보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서 법화경을 설했다고 해도 틀렸다고 말할 수 없지만 법화경은 부처되는 것에 대한 이야기, 부처님의 온갖 비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포인트가 다르지요. 업보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설해진 가르침은 법화경 이전에도 많았어요. 그런 가르침으로 근기가 높아진 이들을 향해 이제 '부처님 되라'는 부처, 불성에 대한 이야기가 법화경입니다. 덕명의 가르침이 변화, 발전된 것이 아니라면 나는 공왕불 기도자들이 주장하는 것이 법화경의 가르침과는 뭔가 다르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습니다.


경전의 명확한 가르침을 부정하면서 경전을 이해했다 말하고 실천한다 말하면 부처님이 어떻게 답하실까요? 법화경의 가르침과 어긋난 것을 주장하는 것이 공왕불교라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 것이 불자의 바른 행과 마음일까요? 나는 잘모르지만 불성의 지혜에 들게 된다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부정하는 일에 자신을 걸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만약 나무묘법연화경 연창하는 마음이 불성의 지혜로 가득해진다면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신의 행을 알아차리고 다시 법화경의 가르침을 그대로 받아지니는 것으로 만족할 것입니다.


불교를 배우세요. 공왕불교를 하든 뭐를 하든 그 근본이 불교여야 할 것이고 그 끝도 불교여야 할 것입니다. 지금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아마도 이 생각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지금의 자리가 다른 듯 보여도 우리가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며 같은 것으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 탐진치를 떠나는 노력이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저도 자유롭지 않으니 늘 참으로 나무묘법연화경 할 것이며 참으로 나무불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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