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다가 임시 저장하는 글들이 다른 이에게도 보이는 것인지 알고 싶어서 로그인을 하지 않고 블로그명 "향광장엄"으로 검색해보았다. 그랬더니 내 블로그 아래 "향광장엄 - 공왕불교와 법화경"이라는 글이 뜬다. 이상하다 싶어 들어가 보았다. 블로그명이 공왕불인 것을 보면 아마도 덕명의 열렬한 지지자인 것 같은데, 블로그 주인장명이 익숙하다. 내 글에도 길게 댓글을 남겼던 사람이었다.
내 글을 그대로 떠서 놓고 자신이 길게 적었던 여러 개의 댓글을 떠서 놓고 그 아래 덕명의 글인 듯한 "법화행자 비방의 죄업"이라는 글로 마무리해두었다. 아, 친절하게 원문 바로가기를 해두어서 내 블로그로 유입되는 일도 있을 것 같다. 나로서는 솔직히 나쁘지 않다. 읽어서 고민할 수 있다면 좋은 일 아닐까 싶다.
그런데 무엇이 법화행자인가. 그냥 법화경을 받아 지닌다고 하면 법화행자인가. 그것에 대한 사유가 필요한 시기다. 솔직히 법화경을 이야기하는 이들의 이해는 천차만별이다. 당연히 서로의 이해가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세세한 점이 다르다 해도 큰 흐름을 벗어나지 않으면 문제없다고 생각한다. 또 큰 흐름마저 벗어난다 해도 법화경의 지중한 가르침을 알기에 바른 이해로 들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크지 비방의 옷을 입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살핀다. 법화경의 가르침을 믿기 때문에 그럴 수 밖에 없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자, 다시 돌아가보자. 무엇이 법화행자인가. 판단의 기준은 법화경에 있다. 법화경을 받아 지니고 그것으로 수행해가는 이가 바로 법화행자이다. 당신이 받아 지닌 것이 법화경인가를 확인하면 된다. 혹시 법화경의 부처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래서 그 가르침을 훼손하고 그 가르침에 들려는 이들의 시야를 흐른다면 법화행자인가. 법화행자 비방의 죄업이라는 글을 주장하려면 스스로 법화행자임에 틀림이 없어야 한다.
기독교를 보라. 다 하나님을 말하고 예수님을 말하나 바른 기독교가 있고 이단이 있다. 불교라고 다르겠는가. 정이 있고 사가 있다. 정에 가까운 이는 이것만이를 외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불교의 가르침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사에 빠진 이들이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시각이 비틀리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그렇게 들리고 보이니 아무리 바른 것을 들이밀어도 자신이 핍박받는 것으로 이해하며 오히려 그것으로 인해 스스로에게 더 강한 족쇄를 채우게 된다.
나도 다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내가 배운 부처님 가르침, 법화경의 가르침으로 보면 공왕불에서 주장하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과 상이하고 법화경의 가르침과 다른 점이 많은 것 같다. 아직 공왕불 기도에 든 초입이라면 맹목적인 기도에만 들기 보다는 날 것 그대로의 법화경을 함께 읽어나가기를 진심으로 권하는 바이다. 다 읽기 어렵다면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공왕불 기도에 대해서 의구심을 표현하는가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알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말하고 넘어가야겠다. 누군가 법화행자인 자신들을 비방한다고 주장할 때, 상대가 법화행자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는가. 내 보기에는 자신들이 이해한 법화경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공왕불교에서 펼치는 주장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나처럼 말이다. 나는 법화행자이다. 비난의 뜻은 없어 다만 바른 것으로 나아가기를 원할 뿐이다. 서로 법화행자라고 주장하면 비방하는 자는 누구이며 죄업은 누구의 몫인가. 비방의 죄업을 따지기 전에 내가 참으로 법화행자인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르게 따라가기 위해 노력하는 참된 법화행자인가를 깊이 사유하는 것이 급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떤가.
(아는 것에 대해 침묵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표현이 필요할 때도 있다. 만약 의구심이 드는 표지판을 보았고 길에 대해 아는 바가 있다면 침묵하는 것이 미덕인가, 확인하여 안전한가를 살피는 것이 미덕인가. 나의 글들은 그런 의문에 대한 표현이며 그 표현을 계기로 나름 교류를 한 결과 안전하거나 좋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는다. 개인 생각이다. 이것은 비난도 비방도 아닌 의문이며 어찌보면 답답함에 가깝다. 내 근기에 합당하게 아는 것에 바탕을 둔다. 그래서 당신이 틀렸고 내가 맞다고 하지 않는다. 단지 내가 배운 법화경 가르침과 상이하다고 말하며 경을 읽으라고 권할 뿐이다. 나의 배움도 근기가 변함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데 무슨 배짱으로 책임질 수 있다는 듯이 말하겠는가. 법에 대한 일은 그만큼 중하여 두려운 일이다. 불자는 바른 것을 추구해야 하며 자신이 머문 지점이 바르지 않다는 것을 아는 순간 떠나는 것에 용감해져야 한다. 쉬운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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