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그냥 기도하라.

향광장엄주주모니 2019. 5. 30. 11:29

기도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라. 각자의 업장이 있어 괴로운 순간이 온다. 그것을 넘어서는 이도 있고 참지 못하고 더 편하고 좋은 길은 없나 살피는 이도 있다. 물론 사람마다 더 편안하고 쉬운 기도가 있겠지만 업장을 넘어서는 것에는 특별한 비책이 있지 않다고 보는 것이 더 유익하다. 다이어트와 다르지 않다. 정말 획기적인 다이어트 약이 있다면 뚱뚱한 사람은 세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어디 그런가. 물론 사람마다 좀 더 맞는 약이 있겠지만 그 약도 각각이 요구하는 것이 있으며 어떤 약을 먹든 적절한 식생활과 적절한 활동이라는 기본적인 요구사항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평생을 책임지지 않는다.


그러니 약을 바꿔가듯 기도 바꾸는 것에 마음을 내는 대신 지금 하는 기도를 충분히 하는 것에 마음을 냈으면 좋겠다. 기도도 적절한 식생활과 적절한 활동처럼 필요한 것이 충족되어야 성취된다. 그것은 정성과 충분함이라고 생각한다. 기도가 힘들다? 정말 기쁜 일 아닌가. 우리 앞에 풀릴 업장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으니 기도와 선업의 날이 지나면 업장이 소멸됨으로 고통이 사라진다. 기도를 바꾼 것이 자랑거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남들이 다 하는 것을 자신은 참지 못하고 걸러진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남들이 다 하는 것을 하지 못한 이에게 인연된 것은 그의 근기에 합당한 기도라는 이야기 아닐까. 물론 힘들다면, 자신이 감당할 수 없다면 내려놓고 자신에게 맞는 기도를 찾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기도의 우열을 말하기 위함이 아니다. 나는 기도가 다 같다고 생각한다. 그 같은 기도를 두고 누군가가 일으키는 분별심에 마음산란할 이에게 기도 바꾼 것이 한편으로는 기도에서 탈락된 일이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더 강력한 기도? 강력하다고 해도 그 강력함이 누구나에게 똑같이 발휘되기가 어렵다는 것을 이야기해주고 싶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그것을 감당하고 운행할 수 있는 이가 아니라면 잠자듯 존재하거나 받은 이의 인생이 엉뚱하게 흘러가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기도 바꾼 것은 기도를 꾸준히 하는 이에게 내세울 일이 아니다. 하나의 기도를 마쳐 근기가 높아진 이에게는 그에게 합당한 새로운 길이 열리지만 하나의 길조차 감당하지 못하고 더 편안한 길을 원한 이가 맞이한 길은 어떤 길일까. 그것을 생각하는 날 되었으면 한다.


읽기에 다소 껄끄러울 내용이라 생각들기도 하고 사람마다 이해하는 바가 다르니 누구의 말이 틀렸고 누구의 말이 맞다고 할 수도 없다. 요즘 나의 글들이 글을 적게 하는 상황이 있고 그에 대해 내 마음이 반응하며 움직이는 것이라 올리면서도 조심스럽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상한 것이다. 이상한데 그것을 누군가가 퍼뜨린다면 얼굴을 마주하여 말하지 않더라도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의견 또한 제시함이 함께 살아가는 불자의 도리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