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자는 것 같기도 하고 깨어있기도 한 것 같은 상태에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거나 글을 읽거나 한다. 표현하기 애매하지만 의식과 무의식의 교묘한 작용으로 느껴진다. 내용이 명확한 것도 있고 글을 읽듯이 주절거리며 넘어가는 것도 있는데 내용이 엉뚱하지 않을 때가 있기에 상황따라 내용을 사유하고 마음에 새기기도 한다.
오늘 아침 늦잠을 잤다. 한번 깨어난 후에 다시 잠을 자면서 꿈이 꾸어지는지, 내가 꾸는 건지 모를 그런 여러가지의 꿈들을 꿨다. 마지막 꿈에서 누군가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무슨 유익이 있는데?' 다른 이의 주장에 대해 이러니 저러니 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냐는 말, 지금 게을러진 너의 수행에 정진하라는 말로 이해됐다.
요즘 그랬다. 2월 구정 연휴를 기점으로 정말 너무 게을렀다. 늘 부처님 가르침을 마음 한 편에 담아두고 살지만,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에 많은 시간을 보냈고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고 다른 이의 주장에 대해 생각하고 글을 적느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먹고 마시고 노닥거리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런 꿈을 꿀 만한 상황이긴 했다.
다른 때였다면 꿈의 소리가 내 안에 깊은 울림이 되어 다시 마음을 추스리는 힘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다. 다시 수행에 마음을 돌리는 것은 맞지만 정말 나의 수행을 열심히 하면 될 일인가 고민하고 있다. 다른 이가 어떠하든 상관하지 말고 단지 내 수행을 해 나가면 족한 것일까. 예전에 법화경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 여러 번을 읽어가면서 문득 '나 혼자 잘되면 뭐하는데.'라는 생각과 함께 슬픈 마음이 느껴진 적이 있었다. 법화경 읽을 자격이라는 글을 읽은 터라 그 때 생각하길 '아마도 나는 전생에 법화경을 이런 마음으로 받아지녔나 보다' 했었다.
아직 무엇이 최선인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정진해야 될 시점임을 알고 있다. 그리고 종국에는 배운 법으로 삶을 밝히고 마주하는 이의 삶을 밝히는 것 또한 불자로서 내가 해야 할 일임을 알고 있다. 외부 상황에 대해 말하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다. 잘못 한다면 하지 않느니만 못하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런 꿈의 작용은 불성이라 하든 불보살이라 하든 수행을 지켜주는 선한 존재라 하든 그 존재가 내 근기를 고려할 때 지금은 남들의 의견에 이러니 저리니 토를 다는 것보다 자신의 수행에 전념하는 것이 더 유익한 시점임을 알려주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스스로의 수행에 정진하면서 다른 이의 주장을 듣고 사유하고 글을 적었다면 달리 이야기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든 법을 바르게 받아지니고 실천하여 나도 남도 편안하게 하고자 하는 뜻은 변함이 없다. 지금 내 자리에서 할 도리를 해나가면서 함께 밝아지기 위해 노력한다면 가야할 길이 명확해지지 않을까 싶다. 그 때에도 '무슨 유익이 있는가, 너의 수행이나 하라'고 할지는 잘모르겠다만, 그런 소리가 변함없다면 많이 곤란할 것 같다. 나를 돌이켜보고 이상하지 않다면 단연코 이리 물을 것이다. '그리 말하는 너는 누구냐?'
'2019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륵불이 올 때까지. 지장보살 (0) | 2019.02.17 |
---|---|
단 한 분의 부처님 명호만 생각하여도 (0) | 2019.02.17 |
누군가에게는 나의 글이 쉬어가는 기회 되었으면 (0) | 2019.02.15 |
마장에 대해 (0) | 2019.02.15 |
법화경, 진실법인 이 경을 지니는 이는 (0) | 2019.0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