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가 기도기간인데 술고기 먹는 회식이 잡혔다며 불보살님께 어찌 잘못을 고할지 고민이라는 글을 올렸다. 기간을 정한 기도라면 술고기를 피하는 노력을 하는 것이 의미있다고 답을 했다. 묻는 이와 나의 답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 글 뒤에 한 사람이 댓글을 달았다. 내용인즉 이랬다. 마음이 가는대로 하면 된다. 회식이 불보살님에게 죄짓는 것이 아니다. 술은 차 핑계대고 고기말고 다른 걸 먹으면 된다. 시시콜콜 이런 거 묻는 것을 사람들은 싫어한다. 결정장애다. 사람이 살면서 많은 생명의 희생을 바탕으로 사는데 그런 것은 생각지도 않다가 육식을 논하는 것은 위선적이다. 법당의 북은 소가죽으로 만드는데 북은 되고 소고기는 안되는가?
맞는 내용이기도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었다. 글에서 느껴지는 감정의 결이곱지 않았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알 것도 같은데 이상하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음이 가는대로 한다는 것은 맞기도 하지만 틀리기도 하다. 따라야 할 마음이 있고 벗어나야 할 마음이 있다. 탐진치의 삼독에 물든, 나쁜 습으로 물든 마음이라면 그것은 따를 마음이 아니다.
고기를 먹는 일은 좋은 일인가? 고기를 먹는 것은 자비에 합하는 행위는 아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먹기보다 맛을 위해 먹는 일이 많으니, 그 맛을 쫓아 고기먹는 것을 즐긴다면 불자가 따라야 할 자비와는 멀다. 내가 직접 죽이지는 않지만, 먹는 이가 있어서 죽여서 파는 것이니 이를 자비롭다 하겠는가? 괜찮다고 하겠는가? 특히 불보살의 자비를 구해 기도하는 자가 자신의 마음에 괜찮다고 이어갈 행위는 아니다. 내가 자비를 버렸는데 나를 위한 자비를 어디에서 주장할 수 있다는 말인가? 불보살에게 죄짓는 일, 용서를 구할 일이 아닌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고기먹는 것이 내세울 일도 아닌 것은 자명하다.
남이 하는 것을 가지고 내 문제를 논해서는 안된다. 유익이 없다. 법당의 북이 소가죽으로 만들었든 아니든 그것은 그 법당의 일이다. 내가 고기먹는 일과는 상관없다. 남의 잘못을 핑계삼아 내 잘못을 가릴 수 있는가? 각자의 잘못이고 각자가 받을 업과가 있을 뿐이다. 고기를 먹는지 아닌지는 생명과 나의 문제이니 다른 것에 눈을 돌려 근본을 흐린다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보라. 교통신호를 어겨도 되는가에 대해서 다른 이들도 어겼으니 나도 어긴다고 말하는 이와 같다. 결과는 교통신호 어긴 댓가를 각자 받을 뿐이다.
만물 덕분에 내가 존재한다. 감사하면 된다. 알게 모르게 나로 인해 죽어가는 생명이 많다. 그렇다고 고기먹는 일이 괜찮은 일인가? 먹기 위해 즐기기 위해 의도를 가지고 생명을 죽이고 먹는 일과 나도 모르게 걸어가다가 개미를 죽이는 것은 같기도 하지만 다르다. 물론 모든 생명은 귀하다. 해치고 죽이는 것은 무엇이든 좋지 않다. 내가 생각하기에 하나를 죽이는 것과 둘을 죽이는 것은 다르다. 하나를 죽이는 것이 둘을 죽이는 것보다 죄가 덜하다. 어차피 죽이고 사는데 고기먹는 것을 논하는 것은 위선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래서 위험하다. 그렇게라도 아는 것이 행으로 연결되고 마음에 새겨지다 보면 큰 살생, 의도적 살생 뿐만이 아닌 작은 살생도 피할 일이라는 것을 절절히 느끼게 되고 모든 생명에 경이를 표하게 되고 알게 모르게 나를 위해 희생되는 생명에 감사하게 된다. 미안하게 된다.
고기먹는 일은 쉽게 말할 일이 아니다. 나도 고기를 먹지만 아는 것으로 인해 고기먹는 것의 의미를 자주 생각한다. 그것은 유익함으로 편안함으로 나를 이끌 것이다. 모르고 짓는다고 마음에 걸림이 없다고 죄가 죄 아닌 것이 되지 않는다. 죄 아니라고 생각하면 죄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인과에서 자유로운 경지에 이른 사람이다. 우리가 그런 경지인가? 나는 아니라서 죄라 하는 것을 짓는 무게를 바르게 알고자 노력하며 산다. 글을 읽는 이 또한 나 같은 경지라면 고기먹는 일의 무게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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