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좋은 마음으로 권한 글이 있다. 나무묘법연화경 본화일승 원돈성불문.
참고하겠노라고 말하고 말한 김에 인터넷에 검색하여 하나의 글을 열었다. 내가 방문한 적이 있는 블로그였다.
다 꼼꼼하게 읽은 것은 아니지만 지금 나로서는 법화경으로 족하다는 생각이다. 각자의 근기, 나보다 더 높은 근기에서 정말 훌륭하게 정리하고 알리는 글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또 인연따라 그것을 만나고 사유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은 그냥 법화경을 직접 하나 하나 읽어나가고 사유하고 그렇게 부딪히며 알아가는 것을 기본으로 삼고 싶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면 내가 직접 마주한 법화경의 가르침을 통해 많은 것들을 알게 된다는 생각이 든다. 생소한, 처음 듣는 공가중인데 들어보니 아는 것도 같은 그런 마음. 많은 것들이 이런 식이다. 인연따라 스님들의 법문을 잠깐 잠깐 읽고 다른 이들이 올리는 법에 대한 글들을 읽기도 하지만 법화경을 만난 이후 나의 수행의 중심에는 법화경이 있었던 것 같다.
명확하게 밝히기 어려운데 법화경을 읽어나가면서 부처님이 법문에서 보이시는 그 비밀한 법들의 아주 작은 부분, 껍질의 한 부분을 맛본 것도 같다. 그런데 그 맛 본 것이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는 스스로를 돌아볼 때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이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그래서 지금의 나는 부처님이 설하신 법 그대로를 배우는 것으로 족하다. 그것이 중요하며 그것이 어느 정도 해결되어야 다른 것들이 편안하게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아마 본화일승 원돈성불문도 그러하지 않을까 싶다. 아무리 훌륭해도 그것이 법화경을 대신할 수는 없다. 또 개인적으로 제목봉창을 내 수행의 주요모습으로 삼고 싶은 생각은 없다. 제목을 부르지 않아도 늘 그 법문을, 그 법을 설한 부처님을 존중하고 찬탄하고 그 대상에 귀의한다. 마음이 나무묘법연화경이라 진실하게 부르고 있다. 그러니 지금은 법화경 가르침을 받아지니고 읽고 외우고 그 뜻을 사유하고 알리는 것, 인연되면 쓰는 것으로 수행을 삼으려 한다.
덧붙이자면 인연따라 자연이든, 인문이든 세상의 책들을 읽을 수 있지만, 지금은 경전으로 족하다. 이상하게 언제부터인지 세상의 책들이 크게 흥미롭지 않다. 법화경에 통하면 세상의 모든 일들을 말할 수 있지만, 세상의 모든 책을 읽어도 법화경을 말할 수는 없다 생각한다. 당신이라면 이 한정된 귀한 시간에 무엇을 택하겠는가. 물론 게으름을 벗어나지 못한 내가 할 소리 아니지만 괜시리 마음을 분산시키는 일에 시간을 내는 것이 유익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하면 적절할지 모르겠는데 근본을 다스리면 사소한 것들은 다 해결된다. 나에게는 경전이 근본이며 세상의 책들은 그것에서 파생된 일종의 아류일 뿐이다.
선한 뜻으로 권해준 이에게는 감사하다 생각하지만 내가 지금 손에 들고 있는 보물로 충분하다. 아직 그 즐거움을 다 이루지 못했는데 다른 무엇을 손에 또 쥐어야 할까. 나의 능력은 그렇게 크지 않다. 손에 쥔 것부터 해결하는게 좋을 것 같다. 언제 해결될지 모르지만 그래도 손에 든 가르침이 어는 정도 잡힌 후에야 다른 것을 돌아보고 이러하다 저러하다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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