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카페에 들어갔다가 법화경기도(공왕불기도)에 대한 오해라는 제목의 글을 읽었다. 내 이야기가 적혀있었다. 올해 3월 카페에 있었던 분란을 이야기하면서 내가 적은 글 때문에 거부감이 있었는데 그게 오해라는 글이었다. 다 괜찮다. 하지만 가린다고 이것이 저것이 되지는 않는다. 명확하다. 경전을 읽어라.
내가 나무아미타불 카페에 공왕불 기도에 대해 글을 적은 이유는 나무묘법연화경이 부처님 이름이다, 아니다 차원의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공왕불만이 유효하며 다른 부처님은 끝났다, 다른 수행은 공덕이 없다는 주장, 부처님이 경전을 통해 전하신 가르침과 사뭇 다른 주장으로 불자들의 눈과 마음을 가린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문제였다. 그것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
글을 올린 이가 적어내려간 주장은 핵심을 피한 주장에 불과하다. 그것을 모르기에 빼놓고 적은 것인지, 알면서 의도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을 부분만을 추려 적은 것인지 모르겠다. 이 세상에 좋지 않은 일들이 무궁무진하다만 가장 좋지 않은 일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왜곡하고 훼손하는 것이다. 그것을 안다면 무책임하게 글을 적어 사람들을 선동하는 일을 쉽게 하지 못한다. 정말 두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몰라서 그랬다고 변명해도 피할 수 없다. 차라리 그런 일에서는 게으른 것이 안전하다.
핵심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공왕불기도는 그들의 말대로 하자면 법화경에서 말하는 수행법이 아니다. 오종수행이 있으나 공왕불기도는 경에서 말하는 기도가 아니다. 법화경에서 팁을 얻었다고 법화경기도를 곧 공왕불기도라고 하는데 경전에서 그런 기도를 부처님은 가르치시지 않았다. 물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부처님이 가르치신 수행법이 경전에 가득한데 그것들을 부정하면서 내세우는 수행법이 마음에 들어오기 어디 쉬울까.
또 법이 곧 부처님이다. 법신에 대해서 알고 있다면 경전이 곧 부처님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아니라고 말할 불자는 없다. 따라서 묘법연화경을 부처님이라고 하는 것이 이상하지는 않다. 하지만 경전 어디에도 묘법연화경을 부르면서 기도하라고 하지 않는다. 경을 곧 부처님인듯이 받아지니라 하고 공경, 공양, 존중, 찬탄하라는 구절이 있으니 그리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으로 경전에 나온 다른 모든 가르침을 뒤집어야 한다면 자신의 믿음이 과연 맞는가를 고민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을까. 법화경에 부처님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과거, 현재, 미래의 부처님들이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그대에게 주어진 근기로 곰곰히 생각해보라. 아주 억지의 논리를 전개해야 공왕불기도의 주장을 관철할 수 있다. 법은 그렇게 억지논리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렇게 분별하고 나누는 것으로는 법화경에서 전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온전히 닿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 주장에 대해 나는 경전을 들어 의구심을 표했고 그것에 대해 경전에 합하는 답을 들은 바가 없다. 무엇이 오해라는 것인가. 핵심을 다 피하고 또 기도자들의 주장이 어떤 말인지 파악하지 못한 채 올리는 글은 분란함을 넘어서는 더 심각한 일이 될 수 있다. 좋은 뜻으로 올렸겠지만 정말 좋은 결과에 이르고 싶다면 그 뜻이 바른 가르침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바른 가르침은 경전에 있다. 잘 읽어보라. 많은 페이지라 읽어보라 말하기 어려운데 그래도 인생거는 일인데 그 정도 정성을 들이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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