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좋을 때는 누구나 좋을 수 있다(2)

향광장엄주주모니 2019. 8. 11. 10:23

아마 이 제목 비슷한 것으로 글을 쓴 적이 있었던 것 같다. 찾아보는 것은 귀찮은 관계로 넘어간다. 그 때는 남의 이야기를 했는데 오늘은 내 이야기이다. 그제 영가를 위한 법화경 독경을 마쳤다. 그렇게 산란한 마음, 산란한 정신으로 경을 읽은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어지러운 가운데 읽어나갔다. 내용을 새기며 읽어야지 했지만 마음이 모아지지 않았다. 그 연장선에서 적는 글이라 글도 산만할지 모르겠다.


살아가다보면 마음이 흐트러지는 때가 있다. 좋아하면서 안주하기도 하고 좋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박차고 나오지 못하기도 한다. 때로는 정신없이 빠져있는 자신의 모습을 알아차리고 자신에 대해 실망하고 절망하기도 한다. 그렇게 그렇게 오르내림이 있는 과정 속에서 점차 저점을 높이며 앞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해왔다. 너무 당연한 일이라고 믿었다. 생각해보라. 짙고 짙은 그 업의 장애가, 습의 굴레가 한번에 없어질까. 택도 없는 소리다.


그런데 지금은 많이 힘든 시기다. 물론 오르내림 가운데 저점이 높아진다는 것을 여전히 믿고 있다. 모든 문제의 해결은 나에게 달려있다는 것을, 좋지 않은 순간이야말로 변화를 위한 호기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많이 피로하다. 여전히 좋지 않은 상황에 빠지고 그 상황에서 힘겹게 빠져나와야 하는 자신에 대해 피로감을 느끼는 것 같다. 이 또한 어리석음의 그늘일 것이다. 짙고 짙은 탐진치의 그늘일 것이다.


한동안 너무 평온한 듯, 견고한 듯 지내왔는데 그 어느때보다 화를 내는 자신을 본다. 화를 내는 자신을 단지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화를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동화하는 것 같이 느껴진다. 이미 지났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그 화가 생생하여 놀라울 따름이다. 그 사실에 다시 화가 났다. 화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매여 있다는 사실이 말이다. 결국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일텐데 그 사실을 알면서도 화를 내는 내가 있다. 수행을 해왔다는 생각과 상이 나도 모르게 강하게 자리잡은 것인지, 성적 나쁜 학생이 학교를, 교재를 탓하는 것처럼 내가 아닌 외부의 상황에 화를 내고 있다. 바보같지 않은가.


좋은 때는 누구나 좋을 수 있다. 그의 진면목은 좋지 않은 상황 속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나의 진면목이 여기에 있다. 마음 아프지만 그것이 가릴 수 없는 진실이다. 그래도 그것을 숨기지 않고 착각하지 않고 이렇게 받아들일 마음이니, 이것이 부족하지만 그동안 수행을 통해 이르게 된 나의 수준이라고 하면 될 것 같다. 부끄러운 수준이지만 그래도 희망이 있지 않은가. 적어도 문제가 있음을 조금은 알아차리고 있으니 불법을 떠나지 않는다면 또 다시 한발 제대로 내디딜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의 상황은 좋은가. 좋을 때는 이 사람이든 저 사람이든 다 좋기 마련이다. 그러니 자만하지 않는게 좋다. 상황이 좋지 않을 때 그 때야 비로소 자신이 어떠한지 조금 맛볼 수 있다. 글을 이리 쓰고 있다만 나는 어떻게 넘어갈까 나도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