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에 세운 독경, 사경, 염불 목표가 있었다. 횟수가 뭐 중요하냐 하겠지만 아직은 그런 것으로 길을 닦아나가야 하는 수준이다. 원래 작심삼일이라고 하지 않는가. 염불은 이제 30% 중반, 독경은 70% 중반, 사경은 0%다. (사실 법화경 사경을 하려고 했는데 뜻이 부족한지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이런 지경이 되었다. 내년에는 시작하려나)
몇주전부터는 매일 매일 꾸준히 수행하자는 뜻을 세워서 능엄주, 염불, 법화경 독경을 조금씩이라도 하고 있다. 그런 마음을 먹었을 때에는 독경만큼은 목표를 달성하자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또 다른 마음이 슬며시 파고들었다. 과연 될까? 조금이라도 매일 매일 하는 것에 의미를 두자.
요즘 블로그에 글을 쓰고 네이버와 다음의 불교 카페에 글을 올리는 일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있다. 어제도 블로그, 카페에 글을 적고 댓글을 확인하면서 시간을 주로 보냈다. 스스로 수행을 빼먹지 않았다고 생각할 만큼의 시간을 들여 능엄주를 읽고, 법화경을 읽고, 아미타불을 불렀고 그런 연후에는 하고 싶은 일들을 하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새벽녘에 꿈을 꾸다 깼는데, 많은 생각이 들었다.
꿈이야기다.
지인과 함께 시장을 갔는데 사람들이 많았다. 뭔가 이슈가 있는 시장같았는데, 알고 보니 300원 미만의 돈만 내면 뷔페식으로 차려진 음식을 먹고 싶은대로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보기에도 제법 먹음직스러웠다. 기뻐하며 지인과 함께 사람들을 따라 음식이 차려진 곳으로 갔는데 한가지 정해진 규칙이 있었다. 새 그릇을 주지 않았고 그릇을 닦을만한 어떤 것도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사용한 그릇을 다시 사용하는 것인데, 그저 그릇에 붙어있는 음식 찌꺼기를 털어내는 것이 최선이었다. 접시를 받아 챙기며 많은 생각을 했다. '여기다 음식을 먹으라구? 어떻게 하면 더 깨끗하게 할 수 있지? 뭐 닦을 것은 없나? 비닐같은 것을 씌워서 먹게 하면 좋을텐데. 아니다, 환경문제도 있는데 그건 안되지. 돈을 조금 올리고 접시를 깨끗하게 해주면 안되나?' 그런 고민을 하는데 눈 앞에 수도가 보였다. 아무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래야 되는 것인지,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인지. 마침 들고 있던 접시에서 김치국물이 떨어져 입고 있던 한복 치마를 더렵혔다(왜인지 모르겠는데 그 순간 한복을 입고 있었다). 순간 한복 때문이라도 물을 조금 써서 접시를 헹궈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수도로 가서 물을 아주 약하게 틀어 접시를 헹궜다. 옆에 다른 여자가 나를 바라보기에 '이 한복이 공연할 때 입는 옷이라서 그런다'고 하니 자기 옷도 공연할 때 입는 옷이라고 한다. 핀잔같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내 앞쪽에 있는 계단에서 그 곳의 주인같은 나이든 아주머니가 사람들을 대동하고 내려오는데 '이 사람이 이런 시스템을 좀 고쳐주면 좋을텐데'라는 생각을 했다.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이윽고 접시가 준비되었고 지인은 다른 사람들과 먼저 한쪽 테이블에 앉아서 나에게 그쪽으로 오라고 손짓을 했다. 음식을 담아가려고 둘러보는데 막상 먹고 싶은 마음이 별로 들지 않았다. 음식이 별로 맛있겠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였다. 다음날 1시까지 전라도 장성의 한 기관으로 가야 한다는 사실이 떠오른 것은. 지인을 따라 시장을 갔다가 음식에 정신이 팔여 그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고 시간을 보니 아무리 빨리 이동해도 제 시간에 닿는다는 것은 불가한 일이었다. 순간 지인을 원망할 것 같은 마음이 일어날 듯 했지만, 누구를 원망할 것 없는 내 잘못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떻하면 좋지. 늦게라도 가면 괜찮을까.' 깊은 고민과 절망에 빠진 상태에서 꿈을 깼다.
꿈의 의미를 알아차리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은 듯이 넘어가고 있었지만, 나의 무의식은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지금 어떤 상황에 빠져있는지, 지금처럼 계속 나아가면 어떻게 될지를.
시장은 나무아미타불카페다. 많은 먹을거리는 사람들이 올리는 수많은 글들이다. 먹을만한 음식이 천지니 읽을만한 좋은 글들이 많다. 돈을 조금만 내도 먹을 수 있으니 누구나 시간과 마음을 조금만 내면 닿을 수 있다. 이런 시장에 마음이 끌려 중요한 약속도 잊은 채 그 곳에 매여버렸으니 글을 올리는 것에 마음이 빼앗겨 정작 내가 정한 수행을 제대로 마치지 못할 위기에 처해있다. 먹고 싶은 생각이 없으니, 그곳의 글에서 큰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내 마음이다(글 자체가 좋은지 아닌지의 문제가 아니다. 나한테 어떠한지의 문제다). 이대로 카페에 마음을 뺏긴 상태가 지속된다면 수행의 성취는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깨닫았을 때는 깊은 고민과 낙담에 빠질 것이다. 또 더러운 접시는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더러움이리라. 그것이 아상이든 교만이든 질투든 그 무엇이든. 생각하건대 다른 사람들도 자신을 닦아가지 않으면서 남의 글 읽는 것으로만 기쁨을 느끼고자 한다면 더러운 접시에 음식을 담아 먹는 것처럼 음식의 참된 맛을 느끼지 어려울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이런 생각을 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들은 더 선명해졌다. 다시 마음을 고쳐먹었다. 독경의 목표는 다 채워야겠다. 그것이 더 중요한 일임을 알겠다. 정해진 시간을 놓쳐 꿈에서 크게 낙담했듯이 내 법계에서 정한 일과 시간을 가볍게 여긴다면 그것을 놓친 것을 알아차린 순간 진짜 낙담하게 될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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