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나의 글에 화답하듯 글올리는 염불행자

향광장엄주주모니 2019. 1. 18. 10:18

이 글 작성함이 좋은 일, 법을 말하는 일, 어지러움을 밝히는 일이 되었으면 한다.


염불 권하던 이가 나의 글에 댓글을 달고 나서 올린 글의 제목이 '이행', '난행'에 대한 글이었다. 나와 연관있음을 감지했고 열어보니 나와 주고 받은 댓글을 캡쳐해서 올렸다. 캡처한 글 아래 배움이 있었다고 했지만 내용의 어디에도 배움이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물론 그 속마음을 모르니 나의 오해일 수 있지만 글을 다 읽어본 내 소감은 그러했다. 법화경을 하다가 이제 염불한다는 그 내용을 길게 적어놓을 뿐이라 무엇을 배웠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아마도 자신이 맞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는 의미 아니었을까 싶다.


그 분이 늘 글을 올리는 맑은 게시판을 피해 '불법은 퇴마가 아니다'라는 글을 기도/생활불교에 올렸다. 애초 불법은 퇴마가 아니라고 블로그에 글을 적고 나서 마음에 부족함이 느껴져 '구제할 것인가, 물리칠 것인가'라는 글을 추가로 적었다. 굳이 말하자면 '불법은 퇴마가 아니다2'정도의 글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그 이후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에 나무아미타불 카페에 '불법은~' 글을 올렸고 며칠지나(하루가 지나서 수정했어요.) '구제할~' 글을 올렸다. 올리면서 그 분의 의견과 대치되는 내용이라 게시판을 고민하여 선정했다. 불필요한 마찰에 연루되고 싶지 않았다. 올리고 보니 '불법은 ~' 뒤에는 '인연'에 대한 글을, '구제할~' 뒤에는 '경전 조금 읽어서는 귀신과 대화도 못하고 경전 조금 읽은 자력으로는 귀신이 상대해주지도 않는다'는 긴 제목의 글을 바로 위에 올린다. 마치 내 글에 화답하듯 빠르게 글을 올리고 있었다.


웃음이 나왔다. 사실 심각한 일인데 그냥 보여지는 현상에 웃음이 나왔다. 오해할까 싶어 적는데 경시, 조롱, 이런 것이 아니라 그냥 그런가보다 싶어 나오는 웃음이다. 사실은 무서운 일이다. 그 분과의 인연이 글을 적은 하나의 계기가 되긴 했지만 그건 내가 가지고 있는 법에 대한 이해이며 생각이다. 누군가에 대한 경시, 더욱이 법에 대한 경시가 아니다. 그런데 내 글에 대한 그의 반응은 다분히 감정적이며 법에 대한 경시가 담겨있다는 생각마저 들었고 그래서 무서운 일이라는 생각들었다. 잘모르겠다.


그 분의 글은 지금까지 다섯 개도 읽지 않았다. 좋은 의도겠지만 너무 이상현상, 신묘한 현상을 강조하는 글들이 주된 것 같아 조금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더는 읽지 않았다. 예전에 글로 적었듯이 신묘함이 시작일 수 있지만 시작되었다면 법을 가르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물론 초보불자들을 위한 포교의 글일지 모르지만 염불하고 법화경 읽는다고 토로한 나에게 했던 그 분의 말과 대응을 생각하건대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정말 그것이 그에게는 중요하고 큰 의미인 것 같기도 하다. 열릴 정도로 열심히 불렀을 것이기에 그것을 존중하고 머리숙이지만 좀 이상하게 느껴지는 지점이 있다.


일단 나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안보이면 어떤가. 어차피 염불하면 불보살님이 나와 함께 함은 사실인데 그것을 믿는다면 보이든 보이지 않든 중요하지 않다. 또 물론 공부가 무르익어 보이고 들리고 알아진다면 좋다고 생각하지만 그 힘이 불법을 위해 자연스럽게 선하게 유익하게 중생에게 회향되지 않는다면 별 의미없다고 생각한다. 잘못하면 불자를 망치는 독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청하고 바란다. 내가 능히 편안하고 선으로 돌릴 수준될 때 필요한 것들이 열리기를 바란다고. 마지막으로 보이고 들리는게 정상이다. 덮이고 쌓여 보일 것이 보이지 않고 들릴 것이 들리지 않는 것 아닌가. 예전에 어떤 스님 말하길 기도 가피 너무 강조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그러셨다. 다른 사람들 다 있는 것이 없다가 이제 생긴 것인데 그게 뭐 대단하냐고. 맞는 말 아닌가. 보인다면 들린다면 놀라운 일이지만 너무 오래 머물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보이고 들리는 그런 것은 원래 불성있는 우리가 앉아야 할 자리니까.


우리의 온라인상 첫 대면은 이랬다. 염불을 옹호하며 '원효, 정토를 말하다'라는 제목으로 가을에 게시한 글에 자신은 예전에 법화경을 읽었는데 이제 염불한다면서 염불문에 들라는 댓글을 달기에 조금 당황했다. (이미 염불하고 있었기에). 글에서 염불한다고 직접적으로 밝히지 않아서 잘모를 수 있겠다 싶어 나는 이미 염불행자라고, 또 법화경도 읽는다고 했다. 또 처음 염불을 권하면서 자신이 법화경 사경을 몇 번하고 염불문에 들었다고 하기에 일부러 내가 진지하게 염불하고 법화경 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지금까지 법화경을 몇 번 읽었고 작년에 염불을 몇 번 했다고 했다. 자랑삼아 내세우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게 뭐 대수라고. 늘 염불에 젖어 사는 이들이 태반이며 법화경 천독한 재가 불자도 있다 들었고 어떤 스님은 만 번도 넘게 읽었다 하는데. 그런데 내 글을 캡처하면서 적은 자신의 글에 자신이 염불을 몇 번 했고 절은 카운트한 것만 몇 번 했다고 적어 펼치기에 그 사람 마음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짐작이 됐다. 뭔가 오해하고 있구나, 잘못 생각하고 있구나 싶었다.


어찌되었든 이번에 나 보란듯이 내가 올린 글마다 화답하듯 다소 감정적이고 법을 폄훼한다는 생각마저 드는 방식으로 글을 올리니 많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두개의 글을 읽지 않았다. 제목만 갖고 얘기하니 글 내용이 제목과 상이하다면 내가 엉뚱한 얘기를 하는 것이겠지만, 지난 글을 생각하건대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또 굳이 자신이 글을 올리는 게시란을 피해 올린 나의 글에 즉각적인 반응을 하니 그 모습과 제목에 담긴 마음이 느껴져 웃음이 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다.


자신의 법을 확신하고 펼치는 것은 좋다. 그런데 그것을 위해 다른 법을 가볍게 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도 염불을 귀히 여긴다. 하지만 내가 부르는 부처님이 모든 부처님을 배제하고 모든 불법을 경시한다면 내가 아는 부처님도 아닐 뿐더러 귀의할 곳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법을 홍포하고자 하는 그 노력이, 잘못하면 마주하는 사람의 심성을 흐리고 불법을 오도하는 일이 될 수 있다. 간단한 일이 아니다. 법을 쫓아가고 법으로 세상을 밝히고자 뜻을 품은 불자의 마음을 흐려 법에서 멀어지게 한다면 그 죄업은 작지 않다. 법을 말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 위험에서 자유롭지 않다. 조심할 일이며 고민할 일이다. 나도 그렇다.


모든 것을 밝히 아는 자리에 오른 부처님이 (물론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없이 평온한 부처님 자리지만 굳이 말하자면) 편안해하고 좋아할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화목과 편안을 깨뜨림은 불자의 도리가 아니다. 부처님 법을 들어 수승함을 가리고 드러난 신묘한 현상으로 불법의 수승을 가리는 것은 떠날 자리지 추구하여 머물 자리가 아니다. 법을 배우고 공부해서 이제 머문 자리가 그 자리라면 안착하지 말고 다시 생각할 문제 아닐까. 경을 읽어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이름을 불러 불성을 가득 담아 무분별한 대자대비에 닿기 위해 마음씀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고민과 노력이 우리를 바른 법에 견고히 머물게 하고 나아가게 한다고 믿는다.


그를 마주하며 크게 아쉬웠던 지점은 법화경을 알고 있다고 스스로 말하는 것이었다. 안다면 저렇게 말하기 어렵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법화경은 부처님 가르침, 모든 법이 정법이라고 말한다. 법이 평등하다고 말한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법화 가르침이 그러하다. 결국 하나로 통하고 이어지지만 그 과정은 하나의 모습만 있는 것이 아니다. 몇 번을 말했지만 극락왕생하여 우리가 법을 배우고 부처가 된다면 마지막 가르침은 법화가르침이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설하는 것이 이 법화가르침이라고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그러니 조금 아는 것으로 다 아는 듯 말하지 말고 분별없는 자비를 벗어나는 그 순간 부처의 가르침, 뜻이 아님을 알아차리는 것이 필요하고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이가 잘못되었다고 말하기 위해 이 글을 적는 것이 아니다. 내가 바르게 안다고 주장하기 위해 이 글을 적는 것도 아니다. 불자라면 누구라도 바르게 법을 배워나가고 실천하고 펼치는 것으로 기쁨을 삼아야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 마음을 써야 한다. 내가 닿아 있는 불법은 그리 말한다. 이런 경험들이 길을 제대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이 되기만을 소망할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아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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