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뇌망상이 끊어진 상태에 올랐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곡됨 없이 그 자리에서 보이고 들리고 느껴진다고 해요. 솔직히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렇지 않아서 뭐라 할 말은 없습니다. 다만 그런 경지에 있는 사람인데 왜 그럴까라는 의문이 남습니다.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제가 한참 공부할 때를 생각하면 상황이 그대로 들어올 때가 있었던 것 같네요. 이해가 명료해집니다.
그런데 왜 높은 경지인 분이 제 글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되는 걸까요? 더 간단히, 더 명료하게 써야 한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었습니다. 제가 써온 글들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나는 법화경에서 부처님이 설하신 방식으로 수행한다. 제목봉창을 부인하지 않지만 그것이 최고 공덕이라는 것은 의문이다. 그것을 주장하는 이들조차 왜 그런 것인지에 대해서 분명하게 밝히지 못하지 않느냐."
제 글에서 안전한 길에 대한 강박과 두려움이 있는 것 같다고 합니다. 내면에 자리한 두려움의 원천을 마주하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이죠.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제 글은 일기처럼 쓰지만, 결국 읽는 이에게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는 마음으로 쓰는 글입니다. 시대가 흐린 탓인지 안전하고 바른 것에 대한 이야기를 쓰게 하는 상황들이 있을 뿐입니다. 지금처럼 말입니다.
제 수행에 대해 조금 적었습니다. 하도 답답해서. 공부하는데 자꾸 자기처럼 공부해야 한다고 고집을 피우니 말입니다. 번뇌망상이 끊어졌다고 하는 분의 이런 고집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제가 수행한 부분을 적은 이유는 별거 아닌 나도 나름 부처님을 제대로 마주하기 위해서 진실한 시간을 보냈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스스로 생각할 때 이미 하근기임을 인정하고 있지만, 위 같은 이유로 내 수행을 밝힌 것이고, 이를 두고 '수행 수준을 은연중 과시하고 남을 업신여기는 뉘앙스로 말한다'라고 하니 좀 당황스럽긴 합니다. 제가 있는 위치가 대단한가요? 별 거 아닙니다. 너무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을 강요하니 저의 의견이 단순한 반론이 아닌 부처님을 마주하려 노력해온 자의 이유 있는 입장임을 강하게 이야기한 것으로 이해해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내가 닿은 곳에 가보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을 글로 표현했습니다. 이런 거 안 쓰는데 너무 답답해서 썼습니다. 법화경을 읽고 사유하면서 세계관이 많이 변했습니다. 넓어졌습니다. 모두가 불성의 존재이므로 인연 따라 결국은 부처가 될 것이고 모든 법이 결국은 하나의 법으로 흐른다는 딱 그 정도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정도만 닿아도 '내가 하는 것이 최고'라는 생각으로 타인의 뜻에 반하여 갈등의 상황을 만들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고집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별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사탕을 먹는데 깨물어 먹든 녹여 먹든 그 결과는 다르지 않은 것과 같아서 자신이 먹는 방식을 타인에게 강권할 필요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래서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굳이 덧붙이자면 저는 사탕 껍질에 쓰여있는 안내서를 따르겠다는 뜻을 가진 사람입니다. 모를 때에는 만든 사람이 하라는 대로 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에서 출발해야 오래 헤매지 않고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이것이 상이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 내가 그분의 권유를 받아들이지 않음은 그의 말처럼 제가 만든 상이 깨질까 봐 두려워서가 아니라 지금으로서는 그 권유가 적절하다고 판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내 상에 집착했다면 법화경을 읽던 내가 염불을 할 리 없고 제목 봉창을 할 리 없고 다양한 만트라를 시도할 리가 없을 것 같은데... 지금 제게 필요한 중심이 흔들리는 것을 염려할 뿐이지, 진리와 통해 있다고 생각되면 받아들임에 큰 제한을 두지 않습니다. 인연 따라 익어가는 근기 따라 흘러갈 뿐입니다.
기도 권유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진짜 상대를 배려한다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상대의 입장을 수용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가 내 수행을 하듯 당신도 당신 수행을 하라고. 좋다고 여기는 것을 선의에서 소개할 수 있지만, 받아들이는 것은 상대의 몫임을 이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번뇌망상이 끊어졌다면 이런 집착하는 태도에서 자유롭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진리를 담고 있다면 오만가지로 분별해 봤자 결국 하나의 법일 뿐입니다.
부처님 법과 인연되었다면 우리는 모두 부처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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