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살아가면서 여러가지 복잡한 상황 속에서 가끔은 화가 나기도 하고 지치기도 한다. 그래서 상대를 탓하기도 한다. 그런데 '누구를 탓해야 할까'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얻은 답은 탓할 대상이 밖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상대하여 일어나는 것이니 무언가 일어났다면 그렇게 상대하는 내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니 대상을 탓하는 것은 무식한 시각으로 보더라도 최대치가 반이어야 하며 온전히 남탓하는 것은 과한 일이 된다.
예전에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나를 지겹도록 따라다니던 업이 다시 실체화되는 순간을 알아차리고 절망했던 일이 있었다. 절대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상황과 사람인데 그 대상에게서 좋지 않은 일들이 또 시작되는 것임을 알아차렸으니 놀랍기도 했고 절망적이기도 했다. 다행히도 당시 나는 법화경을 읽고 염불을 하면서 나름의 수행을 해나가고 있었다. 그래서 인연을 피하는 대신 마주했고 나와의 만남이 두 사람 모두에게 좋은 일로 마무리되도록 부처님께 발원하면서 그 시간을 보냈다. 노련하지 않았고 미숙했기에 힘겨운 시간이었는데 그 과정을 보내고 나는 많이 자유로워졌다. 상대와의 인연이 어느 정도 이어졌으나 시간이 지나고 나서 정리되었다. 문제에서 떠나게 된 나와는 달리 상대는 여전히 그런 악연을 반복해가고 있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라. 만약 당시 내가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수행해가지 않았다면 인연으로 도래한 만남의 순간에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과거의 습대로 빠져들고 휩쓸려 좋지 않은 과보를 겪고야 말았을 것이다. 그런 관계 속에서 절망, 고통,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일어났을 것인데 이것에 대해 과연 누구를 탓해야 할까.
두 가지 측면을 살펴보면 좋을 것 같다. 먼저 일이 일어나는 인연의 책임은 나에게도 있다. 둘째 일어나는 인연에 대해 어떤 대처를 하는가로 다음이 많이 달라진다. 이 두 가지를 보면 나에게 상당한 책임과 권한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남탓을 해도 나쁘지는 않다. 일이 일어나는 인연이 남에게도 있는 것이고 그도 역시 좋은 대처를 할 수 있는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그것을 남에게 주장할 수 있는가. 주장해서 바꿀 수 있는가. 현실적으로 남을 바꾸는 것보다 나를 바꾸는 것이 훨씬 실현가능성 있는 일이다. 또 운이 좋으면 나의 변화로 상대가 변하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그러니 누구를 탓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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