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들어가는 불교카페에 생활이나 신앙에 대해 상담하는 공간이 있다.
카페 멤버가 공개적으로 묻는 글들에 다양한 댓글들이 달린다.
그런 고민이나 질문을 읽어보고 나 또한 댓글을 단다.
질문과 댓글을 보면서 배우기도 한다.
질문자는 간절하게 답을 기다릴 것이고, 비록 자신의 질문은 아니지만 그 글들을 통해 배우는 사람도 있으니, 답을 할 때에는 좋은 바램을 갖고 고민하여 적는다.
어제는 법화경 사경에 대해 자신이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를 묻는 글이 있었다.
이미 몇 개의 댓글이 달렸지만, 나 또한 법화경을 독송하는 자이기에 '부처님을 아버지로, 보살님을 스승으로 생각하며 편안하게 사경하라'고 댓글을 달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댓글에 어떤 이가 글을 올렸는데, '법화경에는 부처님을 아버지로, 관보현경에는 보살은 어머니라고 념하라고 했다'는 내용이었다.
그 글에 안락행품의 내용을 적어주었다. 그리고 어머니이든 스승이든 돌보는 마음은 한가지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자신이 아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 단지 좋은 마음이었을까?
그가 좋은 마음이었을지를 비딱하게 느낀 나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사실 중요하지 않은 일에 마음쓰지 말고 차라리 고민있는 사람에게 유익한 글을 올려주는 것이 더 낫지 않겠냐고 약간은 질책하고 싶었다.
어머니면 어떻고 스승이면 어떤가.
부처님을 아버지 대신 어머니로 부른다고 법계가 뒤집어질까?
보살을 어머니 대신 스승이라 부른다고 정녕 문제가 되는 것인가?
내가 아는 부처님 법은 그런 것이 아니다.
만약 아니라면 다시 바르게 알면 되는것이고.
수행하면서 겪는 마음과 행동의 변화를 보면 분명 그런 것들이 걸림이 되는 단계가 있고 어느 순간에는 그런 것에서 자유로워진다.
그러니 이런 댓글 다는 마음을 따지는 이 졸렬한 마음에서도 결국은 자유로워질 것이다.
오늘은 카페에서 열지 않던 메뉴를 열어 글을 읽었는데, 댓글 단 사람이 법화삼부경 기도하는 법(?)이란 제목으로 글을 적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참 인연이 신기하다 싶었다.
글을 쭉 훑어보았다.
기도하는 그 과정의 글 속에 법화삼부경의 여러 품들이 들어가 있었고 부처님이 아버지, 보살이 어머니란 문구가 선명했다.
이래서 그랬나보다 싶었다.
늘 그렇게 기도를 한다면 정성도 공덕도 대단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이런 아쉬움도 있었다.
'그냥 법화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쭉 많이 읽어보면 좋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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