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삼부경은 잘알지 못한다.
염불을 시작하고 나서 아미타 부처님은 어떤 분인지 궁금하여 몇 번 읽어본 것이 다라 내용을 깊이있게 언급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생각하는데 오늘 극락왕생의 인연에 대해 찾아보다가 무량수경의 게송 한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몇년 전에 읽었을 때에는 글자만을 읽고 넘어갔을 터인데 법화경에서의 부처님 말씀과 너무 닮아있어 적어보려 한다.
성문이나 보살들은
부처님의 거룩한 마음 다 알지 못하네
비유하면 날 때부터 눈먼 사람이
길을 가면서 다른 사람 인도하는 것과도 같네
여래의 크신 지혜 바다는
깊고도 넓어서 끝이 없으니
성문이나 보살로는 헤아릴 수 없고
오로지 부처님만이 홀로 분명히 아시네
부처님의 거록한 마음은 성문, 보살들도 다 알지 못하고, 지혜바다는 오직 부처님만이 분명히 아신다고 하지 않는가. 이 말은 법화경에 나오는 말과 매우 닮아있다. 불지혜는, 부처님의 마음은 그런 것이다. 법화경에서 부처님이 말씀하시길 불지혜는 알기 어렵고 여래에게 배워야 한다고 했다. 그러니 불지혜를 알고 싶다면 인간의 머리에 의지하지 말고 온전히 불성에 기대어야 한다. 나역시 눈먼 상태로 길을 가면서 다른 이를 인도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할 것 같다.
다른 이야기를 조금 덧붙인다. 오늘은 염불, 아미타부처님에 대해서 더 명확하게 잘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었다. 염불이 의미없다고 말하는 이가 있어서 그가 말하는 주장의 근거에 대해 부처님의 가르침인 경전을 들어 정말 그러한가를 이야기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가끔 어떤 이야기를 들으면 충분히 알지 못해서 하는 말같다는 생각들 때가 있다. 물론 이것이 내가 충분히 알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어찌되었든 가르침을 전체적 흐름 속에서 유기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구절 하나, 표현 하나를 들어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 위해 선택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들 때가 있다.
'2019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미타부처님은 이미 아니다라는 주장에 대해 (0) | 2019.03.02 |
---|---|
법화경 근기품(신해품)의 비유를 생각해보다. (0) | 2019.03.02 |
제목봉창(공왕불), 내 글에 대한 반감의 표출 (0) | 2019.03.01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지닌다는 것 (0) | 2019.02.28 |
(홍익학당) '한 방에 이해하는 불교 총정리'를 보다. (0) | 2019.0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