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사람을 믿어 생기는 허물이라는 글을 적었었다. 오늘 그 글이 생각났다. 오늘은 한번쯤 내가 무엇을 믿는가를 생각하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의외로 사람을 믿는 경우가 많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당신이 따르는 그 역시 탐진치에서 온전하게 벗어나있지 않다. 그의 무엇을 믿으려고 하는가. 선한 마음, 의도를 믿는가. 깨달았고 하는 바를 믿는가.
선한 뜻에 매료되었다고 주장하지 않았으면 한다. 왜냐하면 선한 것과 바른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바른 것에서 벗어난 선함은 우리를 전혀 엉뚱한 곳으로 이끌고 간다. 목적지라고 도달했는데 다른 곳이다. 당신이 느낀 그의 선함으로 충분히 감사하니 모든 것을 다 감수하겠다고 흔쾌히 말하겠는가.
부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잘 들어보라. 선하다고 생각한 그 사람이 정녕 바른 말을 하는지 잘 들어보라. 처음에는 명확하게 보일 부분이 점점 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인정하기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당신의 삶이, 노력이 그 사람의 행로에 많이 들어갈수록 그것을 벗어나는 것은 스스로의 삶을 부정하는 것과 같은 두려운 일이 되기 때문이며 그가 준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게 되기 때문이다.
깨달았다고 하는 이의 말과 행동을 살펴보고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어떤 것을 깨달았다고 말해야 할지 모르지만, 부처님이 말씀하신 깨달음은 얕은 것에 있지 않다. 머리로 깨치고 부분을 깨친 것은 우리가 목표로 삼아야 하는 깨달음이 아니다. 깨달았다면 열린 마음으로 수용할 것이며 다른 말을 하는 당신을 부드럽게 가르칠 것이다. 그의 모든 언행에서 편안하고 안정감을 느낄 것이다. 말과 행동이 하나로 일체화될 것이다.
솔직히 깨달음에 대해서는 말하기가 어렵다. 불가하다. 왜냐하면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금은 가늠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불보살을 깨달은 분들이라 한다. 그러니 누군가가 깨달았다고 한다면 적어도 그 깨달은 자의 언행, 품성에서 조금은 그 분들의 성품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 방편에 따른 지혜의 말을 할테니 어렵지 않고 명확하지 않을까.
우리의 믿음은 바른 가르침을 향해야 한다. 그러니 사람에게 배울 때에는 모든 것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이상한 지점에 대해서 알아보고 사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바르지 않다면 때로는 떠나야 하는 순간도 온다. 사람을 사랑하고 존중하고 배우는 것은 좋다. 하지만 부처님이 말씀하셨듯 사람을 믿어 생기는 허물이 있다. 우리의 믿음이 어디를 향하는지 곰곰히 생각해보는 하루 되었으면 한다.
'2019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많이 아는 것 같은데 이상한 느낌 (0) | 2019.05.07 |
---|---|
버릴 똥고집 (0) | 2019.05.07 |
불교의 핵심은 행에 있다는 스님의 글 (0) | 2019.05.05 |
늘 돌아오는 곳 (0) | 2019.05.05 |
나는 왜 글을 쓰는가 (0) | 2019.05.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