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불교의 핵심은 행에 있다는 스님의 글

향광장엄주주모니 2019. 5. 5. 13:49

살면서 나를 가르치는 선지식을 많이 만난다. 물론 개인적인 친분을 가지고 있지 않고 열린 관계 속에서 혼자 선지식이라 생각할 뿐인 그런 관계이다. 지금은 인터넷에 올려진 글을 통해 가르침을 배우고 고민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런데 정말 개인적 교류를 할 선지식이 필요하다면 그런 순간이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막연하지만 그런 믿음에 흔들림이 별로 없다. 오늘은 내가 마음으로 선지식이라 생각하는 한 스님의 법문에 나오는 글귀 하나를 적어보려 한다. '불교의 핵심은 행에 있지, 많이 아는 데에 있지 않다'는 글귀이다. 그 글귀가 나오는 부분을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마조 또한 선사를 모시며 10년을 살았다.

고목이라도 잡풀 가운데서는 석자 이상 자라지 못한다.

요즘 인터넷이다 뭐다 해서 불교에 관심만 가지면 얼마든지 공부하지 쉬워졌다.

그렇다고 혼자 집에서 공부만 한다고 해서 마치 불교를 다 아는 것처럼 여기는 헛똑똑이는 되지 말아야 한다.

불교의 핵심은 행에 있지, 많이 아는데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마지막 구절이 없었다면 아마 나는 한동안 고민에 빠졌을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혼자 집에서 공부만 한다는 구절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헛똑똑이라는 말에 그대로 빠져 허우적거릴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다음에 이어지는 구절에서 편안해졌다. 비록 내세울 것이 없지만 아는 것과 행을 일치시키기 위한 노력이 삶에 들어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배워서 알았고 알아서 그렇게 살아가려 노력하는 과정에 있다. 이 과정이 간단하지도 쉽지도 않지만 온전하게 거치고서야 내 멋대로 살아가도 그 모든 것이 불성의 지혜와 자비에 합하는 순간에 이를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다.


스님의 법문에서 사실 온전히 자유로워진 것은 아니다. 분명 훌륭한 스승을 만나 바른 가르침으로 나아가는 것을 귀하고 중하게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조와 마조의 스승인 선사와의 만남이 그러하다. 나 역시 훌륭한 스승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하고 나에게 맞는 것을 명확하게, 놓칠 수 없게 알려줄 스승을 원하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 부족함이 있을까 싶다. 나를 가르치는 부처님이 계시고 보살님이 계시고 모든 선신들이 있는데 마음을 하나로 모은다면 그 가르침을 온전히 배워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내 착각일 수 있지만 이 착각은 대략 견고한 것도 같다.


또 한가지, '마치 불교를 다 아는 것처럼'이라는 말에서 나는 자유로울까. 대략 그러하다고 생각하지만 늘 스스로를 점검할 필요성은 느낀다. 안다고 할 바가 없다고 했는데 혹시 조금 아는 것을 많이 아는듯이, 모르는 것을 아는듯이 스스로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생각하건대 이 점검에서 자유로울 이는 아마 거의 없을 것 같다. 그 정도로 안다는 상은 지독하고 교묘하게 마음을 파고 드는 것 같다. 오늘은 자신이 안다고 말하는 만큼 행이 받쳐주는지를 돌아보는 하루 되었으면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아직 갈길이 멀었으니 다른 이를 점검하고 평가하기 보다 그 매서운 눈을 자신에게로 돌리는 하루 되었으면 한다. 나 역시 그런 날 되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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