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랜만에 어떤 이의 글을 이리 저리 읽었다. 예전에 나의 글에 대해 비난조의 댓글을 많이 달던 사람이었다. 가르쳐도 될만큼 아는 바가 많겠다 생각들었다. 처음에는 내가 이 사람을 오해했는가 싶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상당히 깊고 넓게 아나보다 싶어졌다. 물론 자신의 이해를 적기보다는 스님들의 법문을 옮긴 것이었지만 공부한 이야기 적은 것을 보니 알기 위해 많이 공부한 것 같았다.
그런데 왜 그런지 잘모르겠는데 마음 한켠이 이상했다. 이 법문, 저 법문, 또 자신이 아는 바를 적은 그 글의 끝에서 마음에 기쁨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새로운 것을 아는 기쁨도, 같은 것을 알아서 느끼는 법우로서의 기쁨도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내 문제일까, 그의 문제일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많이 안다 생각들지만 이상하다는 이 느낌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드러내는 앎과 느껴지는 행이 다름에서 오는 것일까. 지금껏 대해오면서 형성된 그에 대한 고정된 시각이 일으키는 착각일까.
많이 아는 말을 하는 것이 이제는 그 자체로 아름답지는 않다. 말이 사람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말이 곧 사람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글로 표현되지만 느껴지는 것이 다를 때가 있기 때문이다. 부처를 말한다면 부처를 보이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글로 적을 때 그 가르침을 살아서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다. 불교는 설법에서 시작하지만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나에게서 끝난다. 우리가 부처님을 말할 때 내가 어떠한가를 살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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