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글을 읽으니 이랬다. 한 사람이 올린 글이 연달아 올라와있어서 눈에 띄었고 글을 열어 읽어보았다.
"불교에는 부적과 삼재풀이가 없습니다(정법불교는 이런 것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 A 스님 법문
"사주, 부적, 삼재풀이, 삼재기도, 방생, 성지순례, 인등, 수능 합격기도, 신년기도, 만년 위패, 스님 생일찾기, 산신기도, 용왕기도 등은 비불교적입니다. 정법불교만이 답입니다." - B 스님 법문
솔직히 한편으로는 이러 글을 적게 된 그 배경과 이유가 생각되었기에 참으로 맞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무엇인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하지 않았다. 이것과 저것을 명확하게 가르는 것 자체가 편안하지 않은 것도 같다. 또 이런 생각이 일었다. '나도 법을 말할 때 이런 모습으로 비춰졌을까? 아니 나도 이런 마음으로 법을 바라보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까?' 만일 그렇다면 별로 기쁜 일은 아닐 것 같다.
불교의 가르침은 앞선 법문에서 스님들이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 마음 밝혀 부처님처럼 되는 것에 있으니 부적, 삼재, 기타 여러가지에 매이는 것은 바르지 않다고 나도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사, 불교에서 말하는 근기가 다르니 그 사람의 입맛을 고려하여 하나 하나 가르쳐나가는 것이 부처님의 방편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오늘 부적, 삼재풀이에 관심이 있어 찾아온 불자에게 이건 비불교적이니 다 던져버려야 하는 잘못된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최선인지는 나도 잘모르겠다.
무엇이 정법인가? 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중심에 담고 있으며 그 가르침을 향해 나가기 위한 뜻이 견고하다면 정법이라 생각한다. 예를 들어 부적을 하나 썼다고 그것을 들어 정사를 논한다면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 것 같다. 방편으로 잠시 쓸 수 있다고 본다. 상황따라 달라질 수 있는 답이라고 생각한다. 법화경에 보면 보살들이 일부러 성문의 모습으로 나타나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일부러 탐진치의 모습을 나타내기도 한다고 했다. 그 보살들은 사라 말할 것인가? 법을 말하고 정사를 말하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또 비불교적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불교는 그 지역, 시대의 특성을 포용하는 특성을 지닌다고 한다. 시대의 특성을 가미했다고 해도 부처님 가르침이 핵심이라면 그것은 불교다. 위에서 비불교적이라고 하는 것들을 통해 부처님을 생각하고 법을 생각하게 한다면 그 또한 부처님 가르침을 향하도록 이끌기에 하나의 방편이 된다 생각한다. 처음도 끝도 그런 현상에만 머물러 단지 나의 복을 기원하는 근기에 머물게 한다면 다시 생각할 일이지만, 저런 행위로 시작했지만 점차 부처님이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가르친다면 좋은 것이다.
예를 들어 왜 방생이 문제인가? 생명을 귀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하고 생명을 함부로 대하는 일이 나의 업장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알게 한다면 좋은 일 아닌가? 무엇을 어떻게 활용해 갈 것인가의 문제이지, 그것이 불교적인가 비불교적인가를 획일적으로 따지는 것은 뭔가 어색하기도 하고 조금 이상하다. 그렇게 불교적, 비불교적인 것을 따지기 시작하면 중요한 것을 놓치고 괜한 일로 힘빼는 모습이 될 수 있다. 내 악행을 다하고 나서 그에 대한 반성없이 나 좀 잘 살고 싶다는 욕심으로 생명에 대한 자비없이 벌이는 방생이 문제라고 본다.
무엇이든 잘 활용하면 되지 않겠는가. 그 길이 부처님 가르침으로 명확하게 이어진다면 방편으로서 의미있다. 그러니 불교적, 비불교적을 따져 비판하기 전에 지금 있는 자리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더 가까워지게 스님들이 가르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대상을 고려하여 법을 설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부처님이 중생을 가르쳐 근기를 키우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을까.
무엇이 정법불교인가? 그걸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가? 인도의 종교색이 가미된 불교는 정법불교인가? 그것이 정법불교이며 불교적이라면 우리나라의 종교색이 가미된 불교 또한 마찬가지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만나는 불교에서 얼마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배워가는가이지, 이것을 하는가 마는가로 단정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
쓰고 보니 굉장히 미묘한 일에 대한 나의 의견을 적은 것이며, 글로 내 생각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그러니 늘 그리 적고 있지만 특히나 이 글에, 또 어떤 표현에 매이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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