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일반화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내가 생각하는 바, 경험하는 바를 조금 적어보고 싶다.
오늘은 바라는 마음, 특히 떠나야 할 바라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바라는 마음'은 하나의 구절이지만 상황따라 다른 뜻과 의지를 담는다. 그러하기에 기도를 해나가면서 가져야 하는 바램의 마음이 있고 멀어져야 할 바램의 마음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떠나야 하는 바램의 마음은 무엇일까?
누구나 좋은 것을 바란다. 어려움이 닥치면 사라지기를 바라고 좋은 일이 생기면 더 오래 유지되고 확장되기를 바란다. 나의 삶이 그러하기를 바라고 내 남편, 아내, 아이들, 부모님이 그러하기를 바란다. 하다 못해 물건을 사도 가장 좋은 것이 내 몫이 되기를 바라고 누군가가 베푸는 호의가 나를 향하기를 바라고 세상의 크든 작든 온갖 운 좋은 일들이 나를 위해 펼쳐지기를 바란다. 좋은 직장을 바라고 좋은 사람과의 인연을 바라고 좋은 보금자리를 바라고 좋은 모든 것을 바란다.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므로 당연한 마음작용이라고 생각한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이제 부처님 법을 배워 길흉화복의 인간사가 인과의 법칙을 따라 흘러간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좋은 것을 바라더라도 조금은 더 생각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생활하다보면 여러 사람들과 만나게 되고 여러 가지 상황들과 얽히게 된다. 그 속에서 나의 입장이라는 것이 생긴다. 인적이든 물적이든 나에게 유익하고 유리한 상황이라는 것이 분명 있게 된다. 자연스럽게 그런 유익과 유리함을 바라는 마음에서 결정을 하고 행동을 하게 되는데, 가끔은 문제가 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탐진치로 흐려져 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또 바라는대로 이루어지면 더 큰 바램을 꿈꾸기도 하고 바라는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원망이나 좌절에 빠져 괴로운 날을 보내기도 한다.
예전에 한 지인을 통해 일자리를 소개받았다. 그리고 어느날인가 문득 그 지인에 대한 마음이나 언행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호의적이 되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무슨 마음의 작용인지를 생각했는데 일자리에 대해서 내 유익을 바라고 기대하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작용같았다. 상대에 대한 순수한 호의가 아닌 탐진치의 그림자가 느껴졌다. 그 시절 그 일과 환경들은 내가 원하는 딱 그것이었다. 그래서 일과 관련된 사람, 특히 일자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에 대한 내 마음이 호의로 가장했지만 분명 탐진치와 가까운 바라는 마음으로 흐려지고 있다고 느껴졌다.
그 마음을 떠나리라 다짐했다. 일에 대해 가졌던 내 본래의 뜻을 새기고 해야 할 바를 다하는 것으로 마음을 돌렸다. 그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스스로를 달랬다. 내가 바른 뜻을 세우고 성실히 일해나가면 이 일을 관두게 되더라도 나에게 더 맞는 일과 인연되리라 스스로에게 말해주었다. 이런 나의 생각은 적절한 것이었을까? 그렇다고 믿고 있다. 좋은 뜻을 세웠고 그것을 이루기에 합당한 모습을 갖추어간다면 일이 안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특별히 그 일이 꼭 이루어지기를 밤낮으로 발원하며 기도하지 않더라도 뜻을 세우고 일상을 그렇게 살아간다면 마음에 품은 소망이 이루어지리라 생각한다. 능히 받을만하면 받게 되고 능히 풀릴만하면 풀리는 것이 아닐까.
만약 일이 틀어져서 갑자기 잘리게 된다면 절망스럽고 어이없고 화가 날 수도 있다. 그런데 기분이 별로 좋지 않더라도 이렇게 하리라 마음을 먹었었다. 좋은 일에서 멀어진 것이라면 나의 부족함이 있는 것이니 그것이 무엇인가를 돌이켜 반성하고 다시 노력하리라. 뜻과 마음이 청정함과 같은 머물러야 할 자리에서 벗어났기에 그리 된 것일테니 바른 마음으로 돌이켜 바른 행을 지어가는 것으로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만약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부족함, 문제가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일과의 인연은 그것으로 충분해서 끝난 것이며 이제 더 좋은 일로 인연되기 위한 과정에 들어선 것이리라. 그러니 좋은 인연을 위해 다시 노력해야 한다.
법계는 한치의 어긋남이 없다고 믿는다. 나에게 펼쳐지는 모든 일들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 지금 드러난다. 중요한 것은 그런 현상을 마주했을 때 내 마음을 어떻게 추스리고 어떤 방향을 향해 나아갈지 결정하고 삶을 어떤 업으로 채워나가는가이다. 절망도 희망도 내 선택을 기다린다. 그래도 다행이지 않은가. 뿌린대로 거두게 되어 있으니 잘 뿌리면 거둘 날이 있다는 것으로 오늘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바라는 마음이 있다면 잘 살펴보라. 좋은 발원, 고통을 벗어나기 위한 간절함으로 가리더라도 그것이 인과를 받아들여 원망에 머물지 않고 밝은 날을 위한 선업으로 장엄하는 것이 아니라면 탐진치의 작용일 수 있다. 탐진치와 가까운 바라는 마음은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 유형이든 무형이든 나의 이익을 바라는 그 마음을 차라리 내려놓고 그저 바른 마음 먹고 바른 행을 닦아가는 것으로 의미를 삼는다면 삶은 차츰 차츰 밝아질 것이다. 그리고 결국 나의 이익이 될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이익이 될 것이다. 분명 부처님 가르침은 우리의 삶을 환히 밝혀주며 기도는 가피력이 있다. 그런데 그것이 정말 삶을 밝히려면 불자의 마음닦아가고 행을 바꾸는 노력이 바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말이 제대로 표현되었는지 모르겠다. 바라는 마음도 잘 써야 선을 이룬다. 일이나 상황이나 사람에 매인다면 한번 의심할 필요가 있다. 지금 이 바라는 마음, 기대는 마음, 의지하는 마음은 부처님 앞에서 바른 것일까. 탐진치에서 먼 것일까.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이런 말을 하고 싶다. 혹시 절망을 느낀다면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그 절망스런 상황으로 걸어들어간 것은 누군인가. 다른 이가 아니다. 바로 자기자신이다. 상황을 탓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수행을 하면 가장 크게 바뀌는 것이 있다. 바로 나 자신이다. 더 이상 바르지 않은 상황, 합당하지 않은 상황에 마음이 크게 움직이지 않으며 그런 선택을 점점 하지 않게 된다. 다시 말해 터무니없는 꼬득임, 진실하지 않은 꼬득임에 넘어가지 않는다. 그 상황이 바르지 않다, 이상하다는 것이 알아지기 때문이다. 정확하지 않아도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한다. 그러니 부지런히 마음공부하고 선업을 쌓았으면 좋겠다. 마음이 청정해지면 바른 판단을 하게 되고 선업이 쌓이면 좋은 일들이 드러난다. 바라는 마음도 탐진치와 멀어지고 청정해져서 온갖 좋은 일들이 생겨난다.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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