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바람피는 아버지와 내연녀를 보면서의 마음 고통을 토로했다. 실제상황을 두고 보면 머리에 피가 솟구칠 일인데 불자라면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 어떤 마음, 생각을 갖는 것이 오래도록 유익할 것인가.
모든 일은 다 그럴만하기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을 이해하면 좋겠다. 예를 들어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것으로 생각해보라. 누군가 손을 들어올렸는데 애초에 그에 맞춰 올린 손이 없다면 손뼉은 쳐지지 않는다. 그런데 나의 업과 습으로 손이 올려져 있다면, 그 상황에 손을 올리게 한다면 손뼉이 마주쳐지게 되는 것이고 소리가 나게 되는 것이다. 그 부분에 대해서 누구를 조정해가는 것이 빠른 변화를 불러오겠는가. 내 마음대로 하기 어려운 남인가, 아니면 그래도 내 마음대로 하기 수월한 나인가.
바람피는 아버지를 만난 인연은 모두가 함께 일궈낸 것이다. 바람필 인자를 지닌 아버지를 만난 어머니가 있었고(결국 바람의 시절을 도래시켰다) 그 사이에서 태어날 인연의 자녀가 있었으며 정신차리지 못하는 아버지에 대하여 경제적 지원을 결정한 자녀가 있었다. 그런 모든 결정들은 결국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 자연스런 흐름을 거스르고 싶다면 업에 매이고 습에 매인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고, 업대로 습대로 살아가는 어머니를 옆에서 일깨우는 것이 필요하다. 삶이, 상황이 불만이라면 내가 가진 인자가 무엇인가를 보려고 노력하고 고쳐나가는 것이 훨씬 빨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한다.
생각해보면 너무 열받아서, 분노가 치밀어서 가만 있기 어려운 순간도 올 것 같다. 그런데 그냥 두어도 바람피는 그들의 미래는 밝지 않다. 참 밝기 어렵다. 내 분노가 치밀어오를수록 울트라급의 어두운 앞날 보장인데 이미 정해져가는 그 어두운 길에 내 발을 담궈 무엇하려는가. 어둠이 닥칠 때 나 역시 그곳에 있겠다는 마음이라면 과감하게, 시원하게 분노하고 표현해도 좋다. 그런데 누가 그것을 바랄까. 정해진 안좋은 앞날에 이름을 끼워넣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말자. '악업은 그대들이 행하는 것이다. 나는 더 이상 그 페이스에 말리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냉정을 찾아가라.
우리가 불교를 가까이 하면서 배우는 불보살은 나를 위시한 모두의 행복과 안위를 위한다. 종국에는 나도 그 마음자리에 이르는 것이 맞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너무 먼 일이라면 나, 그리고 내가 사랑하고 귀히 여기는 이들의 참된 행복과 안위를 생각하라. 그것을 이루는 길은 나의 행복과 안위를 막는다고 생각되는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에 있지 않으니, 그럴수록 더 멀어지게 된다. 오롯이 내가 나의 삶을 어떻게 해나가는 것이 좋은 일이 되겠는가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가족이 바람을 피는가. 아픈 일, 화가 나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화를 가라앉히고 떠나간 마음에 미련을 두지 말라. 집착함으로 고통이 시작되며 악업에 휘말리게 되어 나의 몫이 나빠진다. 자신이 있는 그 자리에서 삶을 밝게 살아가라. 돌아올 순간이 되면 후회하며 돌아올 것이고 돌아오지 않는다면 어떻겠는가. 각자의 업과는 서로 대신할 수 없다는 지장경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오래도록 자신을 따라다닐, 죽어도 남을 자신의 업을 밝혀나가라. 분명 더 좋은 날로 이어질 것이다.
힘을 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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