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이런 고민을 적고 있었다. '눈꺼풀이 쳐져 있고 한 쪽에는 안검하수가 있다. 다른 이들이 멍청하게 만만하게 보는 것 같고 스스로도 자신감이 없고 눈을 마주치지 못하니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다. 큰 마음먹고 안검하수 수술, 눈매 교정수술을 받기로 했는데 조금 달라진 삶을 살고 싶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미래가 밝을수도 있고 어두울 수도 있는 것이니 말이다. 다만 불자로서 배워온 것들을 바탕으로 생각하면 성형수술로 그의 안 사람이 바뀌어 행이 좋게 변화하지 않는다면 긴 인생을 두고 잠깐의 만족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우리가 가지고 태어나는 모습은 지난 과거의 업으로 인함이라고 볼 수 있다. 법화경이나 지장경에 보면 행의 과보로 외모가 어떻게 된다는 것을 언급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지금의 내 모습까지도 업의 결과, 당연한 결과, 그런 선상에서 이해하는게 이상하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이제 두 가지 측면에서 성형수술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냥 개인의 의견이니 가볍게 읽었으면 한다. 먼저 받아야 하는 결과에서 스스로 빠져나온다고 과연 사라질 것이며 완전하게 빠져나올 수 있는 것일까. 불교의 인과는 한치도 어긋남이 없다고 했는데, 지금 이 순간 업보가 다했다면 성형수술이 해결책이 되겠지만, 업보가 남았다면 무엇이 되었건 괴로운 과보로 돌아올 것이고 빠져들 것이다. 그러니 불자가 해야 할 일은 성형수술의 여부와 상관없이(다시 말해 수술을 하든 말든) 내 업보를 수용하고 잘못을 돌이키고 온갖 선업으로 삶을 장엄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 측면은 불자로서 조금 더 의미있지 않을까 싶다. 성형수술을 통해 괴로움에서 빠져나왔고 더 편안하고 밝은 날, 살기 좋은 날이 펼쳐졌다고 치자. 그 속의 나는 어떤 마음과 행을 갖추고 있을까. 과거의 업보로 오늘 괴롭거나 즐거울 수 있고 오늘의 업보로 내일 괴로울 수도 즐거울 수도 있다. 그러니 오늘 제대로 살아갈 힘을 갖추고 있는가를 살펴야 한다. 오늘이 호시절이든 악시절이든 신구의의 삼업이 그대로 업보로 돌아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성형수술이 호시절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니 시절에 상관없이, 조건에 상관없이 바른 마음과 행으로 살아갈 힘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좋지 않은 습을 벗어나야 한다.
사실 나도 아름다운 외모를 지향하는 평범한 사람이다. 실상을 말하자면 거리로 나서는 순간 키작고 뚱뚱한 시골 촌아줌마, 딱 그 모습이다. 하지만 번쩍거리는 사람들, 환경을 대해도 과거에 비해 크게 주눅들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다. 내 안의 빛나는 불성을 느끼고 호응하는 세상을 느끼면서 평온해지고 밝아진다. 점차 변하지 않고 사라지지 않는 것을 바라고 믿고 따르는 것에 마음쓰게 된다. 다양한 상황들이 존재하겠지만, 그 모든 상황 속에서 놓치지 않으면 좋을 것이 바로 바른 가르침이다. 바른 가르침을 통해 괴로움을 벗어날 힘을 얻게 되고 평온한 즐거움에 안주하게 되니 말이다.
빠르게 흐르는 시간을 생각해보라. 우리가 눈 앞에 마주한 노년을 바라보라. 인생은 그러하여 젊음을, 아름다움을, 부귀를 자랑하여도 결국 같은 곳으로 빠르게 돌아가게 되어 있다. 아니, 오늘을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의해서 눈으로 가늠할 수 없는 대단한 차이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니 무엇을 마음에 담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근본이 다스려지면 드러나는 여러 현상이 그를 따라 자연히 다스려짐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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