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에 대한 의견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

향광장엄주주모니 2019. 12. 20. 11:56

누군가 오래된 행운목이 천장에 닿을 듯 높이 자라서 그것을 어찌 해야하는지 묻는 글을 올렸다. 풍수지리적 관점에서 사람을 넘어서는 식물을 집에 두는 것이 사람에게 좋지 않다는 그런 비슷한 이야기로 인한 고민이었다. 나도 어디선가 집에 있는 나무가 집 높이를 넘어서는 것이 좋지 않다는 영상을 본 적이 있는 것도 같다. 그러니 고민을 하는 것이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글을 읽고 사실 별로 댓글을 달 마음이 없었다. 그런데 잠시 후 정말 시니컬한, 내 생에 별로 써본 적이 없는 짧은 답글을 달고야 말았다. '나무 입장은 어떨까. 나무 입장에서 생각해주면 두루 두루 유익할 것 같다.' 이런 내용이었다. 누군가는 작은 행운목을 들여와서 자라난 것이니 괜찮지 않을까라고 했는데 잘은 몰라도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높이를 문제삼는 것은 현재의 상태를 말함이지 원래 어떠했는가를 말함이 아니지 않겠는가. 예전에 작아서 괜찮았으나 지금은 커져서 달라졌다는 것을 놓치면 안될 것 같다.


아무튼 그런 글을 올린 이유는 나무기운에 눌리는가 마는가, 그것을 어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 자체가 너무 들인 자의 시각으로만 이루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시각은 있는 그대로를 알아차려서 최상의 것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불자의 최상에는 나를 위시한 함께 하는 이들의 행복이 담겨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글에서 느껴지는 마음은 나만의 이익에 관심을 갖는 마음 같아서 썩 유쾌하지 않았던 것 같다.


무슨 나무의 입장까지 헤아리는가라고 말할 수 있지만 모든 생명이 귀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존재의 윤회를 알고 있으니 모습이 달라도 다르지 않은 존재가 우리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따라서 나의 행복이 중하다면 대상의 행복도 중한 것이며 그것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여 기울어진다면 다시 돌이켜 갚을 것들이 생겨나게 될 때 선하지 않은 모습으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그러니 어찌 생각해야 할까. 너무 나만의 시각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대상을 바라보지 말았으면 한다. 나의 선택이 진정 최상의 선택이 될 수 있도록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는 시각을 갖추고 분별없는 자비심을 마음에 들이기 위해 노력했으면 좋겠다.


또 굳이 덧붙이자면 나에게 해로울지 모르는 행운목마저 품어버린 사람의 행복을 행운목은 빌어주지 않겠는가. 그 밝은 뜻과 염원은 해로움을 능히 넘겨버릴 것이다. 해로울지 모르는 행운목마저 품어버린 사람은 그의 내적인 힘이 쌓여갈수록 해로움을 이로움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나는 품어 넘어버리는 이가 되고자 한다. 물론 힘든 일이라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