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읽는 법화경을 알게 해준 카페가 있다. 종종 들어가는데 새로운 글이 잘올라오지 않았다. 요즘은 새글이라고 해봐야 한달에 한번씩 책을 번역한 분의 강설회에 대해 공지하는 글이 올라올 뿐이었다. 그런데 7월 공지가 뜨지 않기에 이제 하지 않는가 싶어 아쉬워했었다. 아직 한번도 참석하지 않았는데 참석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어제 카페에 들어가니 새로운 글이 하나 게시되어 있었다. 내용인즉 '강설회 공지가 안떠서 카페 담당자에게 문의하니, 강설회에 피해를 주는 이들이 있어 이제 공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데 자신도 그 피해주는 이들 중 한명이라고 들었다. 자신이 올해 지각을 하게 된 이유는 병증이 있기 때문이며 어찌되었든 회원들에게 미안하고 다른 분들은 강설회에 잘 참석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좀 이상했다. 편안하지 않았다. 각자의 사정이 있겠지만, 누군가 법문을 설하고 또 누군가 그 법문을 진실로 듣기 원한다면 이런 상황으로 강설회가 펼쳐지는 것이 정말 좋은 것인가에 대해 의문이 든다. 법화경의 내용을 생각하면 그렇다. 법사는 분명 멀리 해야 할 대상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마음은 모든 대상을 향해 자비로워야 한다. 멀리 해야 할 대상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대상이 법 듣기를 원하면 설해줘야 한다. 나는 법화경에서 당부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그리 이해하고 있다. 그러니 지각을 함으로써 피해를 입힌다고 법을 듣고자 하는 이를 제외시키는 것은 뭔가 법화경을 읽는 나로서는 편안하지 않다. 영축산 법화경 설법의 회상에서 오천의 증상만이 물러나서야 부처님은 법을 설하셨다. 만약 증상만이 아니었다면 그 자리에 남아 설법을 들었을 것이다. 지각을 한 것은 좋은 일이 아니지만 법을 듣지 못하는 증상만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만약 부처님이었다면 그를 설법회상에서 제외시켰을까.
이 또한 인연의 흐름일 것이다. 이미 나에게 법화경이 있으니 꼭 강설회가 아니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일이 진행됨을 보니 마음이 그렇게 끌리지 않는다. 좋은 기회를 놓치는 일인지 모르지만, 지금 나에게는 강설회 공지에 대한 변경사항이 부처님의 자비, 지혜, 또 법화경의 가르침과는 다르게 느껴진다. 적으면서 생각해도 간단한 일, 쉬운 일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들지만(각자의 사정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부처님의 가르침에 가까운가를 사유한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 것인가에 대해 조금씩 알아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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