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공왕불 기도를 중지하고 법화경 기도를 하고 있다는 분의 댓글이 아주 기네요. 댓글에 긴 답글 적기도 불편해서 그냥 본글로 적어보려 해요. 아무튼 그분은 결국 이 말을 하고 싶은 것 같습니다. "다만 한 가지 확신하는 건 부처님께서 주시는 그 어떤 공덕보다 법화경의 제목을 부르는 공덕이 가장 크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알면 얼마나 알까요? 아니 아는 것이 정말 아는 것이기는 할까요? 가끔은 이러하다 저러하다 의견을 나누는 것조차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진리 앞에서는 그저 겸손해야 합니다. 제대로 닿은 것인지도 알지 못하는 일이 허다할 테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나에게 알아지는 것들이 있다고 말합니다. 내 근기, 내 이해 수준일 뿐입니다. 아무튼 제가 유지하려는 태도는 잘 알지 못하는 것을 아는 듯이 말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답하겠습니다. 저는 사실 그런지 아닌지 잘 알지 못합니다. 그렇게 때문에 위의 발언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시비를 논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몇 가지를 적어서 글 읽는 분들에게 생각할 여지를 드리는 것이 맞겠다 싶습니다. 긴 글이 될 것 같습니다.
어떤 수행을 하든 경전 읽기를 병행하시라고 권해오고 있습니다. 그것이 수행의 시작이든 아니면 다른 것을 꾸준히 하다가 중간에 하든 상관없습니다. 이익만 있고 해가 없는 수행법이라고 생각하기에 모든 이들에게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 경전 읽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 온다면 안 해도 되겠지만 세상에 그런 이가 얼마나 있을까요?
수행에서는 체득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바르게 안내받지 못한 자의 체득은 위험할 수 있다고 많은 선지식이 경고합니다. 한 가지에 집중하여 신통력이 생깁니다. 그리고 결국 그것에 매여 더 나아갈 수 있는 자리에서 주저앉고 맙니다. 때로는 맑지 못한 귀신의 장난에 놀아나기도 합니다. 이게 현실입니다. 수승한 육신의 스승을 모시지 못한 상황에서 경전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으며 뛰어난 길잡이가 되어 줍니다. 읽을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죠.
불교는 마음심(心), 이 글자 하나로 귀결된다고 합니다. 반복되는 생각은 강력한 힘을 지니게 되며 결국 마음을 움직이는 힘으로 작용합니다. 경전은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진실이죠. 한번 읽어도 좋겠지만 지속해서 읽는다면 안전한 길을 다지고 다지는 일이 됩니다. 결국은 가야 할 목적지로 우리를 향하게 만들어 줍니다.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읽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보이는 현상으로 본질이 같다고 볼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이 사람이 의지하여 고난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방법들 모두가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고 받아들이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요? 선인의 탈을 쓴 사악한 존재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지니는 존자나 다 훌륭하다고 말하는 일이 됩니다. 비유이니 너무 이 문구에 매이지 않으시길.
아무튼 "이 기도를 하니 문제가 해결되잖아. 그러니까 이 기도에는 뭔가가 있는거야."라는 논리는 그래서 다시 생각해 볼 여지가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이 기도가 최고지, 다른 것은 다 아니야."라고 사고가 확장되는 순간 더 큰 오류에 빠지게 됩니다. 더 나아가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일반화시키면서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세계관을 주입하는 순간 타인이 바르게 사유할 가능성을 박탈하게 되므로 가벼운 일이 아니게 됩니다.
내가 어떠한가 살필 때에는 믿을 수 있는 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안전합니다. 본격적으로 법화경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법화경을 가지고 주장하려면 경전의 가르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경에 보면 법화경의 가르침이 이미 최고라고 부처님이 말씀하셨는데 제목봉창이 가장 큰 공덕이라는 말은 법화경으로 수행하는 우리의 보편적 세계에 안전한 말일까요?
다라니품에 보면 나찰녀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그대들이 다만 이 법문의 이름만이라도 지니는 법사들을 수호할지라도 훌륭하기 이를 데 없거늘 어찌 하물며 오로지 전적으로 또 온전히 이 법문만 지니고 또 경문을 경전으로 엮고 나서 경전에 꽃 향 화만 도향 말향 의복 당번과 유등 소유등 향유등 첨복유등 바리사가유등 청련유등 수만나유등으로 공양하는 이들을 수호함이랴. 고제여 그대와 그대의 권속은 마땅히 그와 같이 경전에 백천가지로 공양하고 또 이 경을 공경하고 존중하는 법사들을 수호해야 하느니라."
이 문구에서 무엇이 느껴지시나요? 이름만이라도 지니는 법사와 오로지 전적으로 법문만 지니고 경전을 엮고 등으로 공양하는 법사 중 굳이 따지자면 누가 더 법화경을 잘 받아지니는 것일까요? 부처님의 말씀 중 어느 법사에게 더 방점이 찍히는 걸까요? 굳이 따지자면 제목 봉창은 전자와 후자 중 어떤 것에 더 가까울까요?
'2023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꿈이야기)만트라 백만번, 싹이 났다. (0) | 2023.02.05 |
---|---|
법화경 제목 부르는 공덕이 가장 크다?(4) (0) | 2023.02.04 |
법화경 제목 부르는 공덕이 가장 크다?(3) (21) | 2023.02.04 |
(법화경)묘법연화만 설하였을 뿐 (1) | 2023.02.03 |
2023년 전(前) 공왕불 기도자의 댓글 (0) | 2023.0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