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불법을 수행하여 마의 장애로부터 벗어나기를 바란다. 능엄주를 매일 읽으려는 이유가 그와 다르지 않다. 나를 포함한 세상이 그런 마의 장애로부터 벗어나서 밝아지기를 평온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읽고 있다. 그렇다고 불법의 주가 퇴마는 아니다.
모든 것이 공하다는 것은 잠시 옆으로 놓아두고 우리가 얽혀있고 살아가는 세상을 바탕에 두고 말하자면 세상 어느 존재도 귀하지 않은 존재가 없다고 생각한다. 단지 지금 처해진 상황이 그런 것일 뿐이다. 누가 악하고 누가 선한가. 지금의 상황으로 모든 답을 낼 수 없다. 내가 고통을 받는다면 고통 받을 이유가 있음을 아는 것이 불법의 지혜다. 누군가 나에게 고통을 준다면 고통을 주는 이유가 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 또한 불법의 지혜다. 그 인과를 알아 불법으로 서로의 삶을 밝히는 것이 더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글을 읽다보면 그런 것보다는 어려움을 당하는 순간 그 어려움을 유발한 존재를 악한 존재로 규정하고 내가 배운 불법으로 물리칠 수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기도 하는 것 같다. 나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그것으로 불법의 의미를 새긴다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다. 불법을 펼쳐 누군가가 두려워하고 떠났다는 것을 자랑삼아 말하고 그것으로 불법을 찬양할 이유로 내세우는 것은 좀 편하지 않다. 다 같은 존재 아닌가. 지금 어려움을 주는 그 존재도 윤회의 흔적을 찾아나서면 그 시작점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인연의 흐름 속에서 우리를 고통으로 몰고 간다. 그런 대상을 불법을 빌어 두렵게 하여 보냈다면 그는 여전히 어둠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말인데 그대의 불법은 평등한가. 그대의 부처님은 누구는 보호하고 누구는 거부하는가. 고통을 견디지 못해 부처님을 의지하여 떠나보내는 것이 우리의 최선일 수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더욱이 불성의 최선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연초를 스펙타클하게 시작하다 보니 능엄주를 읽을 때 모든 마의 장애를 깨버리기를 진심으로 발원하고 있다. 그런데 마의 장애를 깨는 것이지, 모든 존재가 본연의 자리로 돌아서기를 기원하고 있다. 예전에 어느 수행하는 분께서 아미타불을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는 염불이라고 했던 것 같다. 그 말을 마음에 새기고 있다. 염불이 나에게 그렇다. 본연, 불성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 나도 당신도 우리 모두가 그러하기를 바라는 마음.
불법을 빌어 퇴마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마 역시 마음을 밝혀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것이 모든 불성의 뜻이 아닐까 싶다. 마라고 나와 다르겠는가. 내가 부처가 된다면 능히 그러하리라 생각해본다. 지금 이 순간 내 능력이 없어서 내가 지닌 법으로 상대를 밝히지 못하고 평온으로 이끌지 못하는 것이니, 단지 퇴마했다면 충분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경험에서 오는 확신이 법에 대한 이해를 편견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법화경 상불경품에 나오는 증상만을 빌어 이미 언급한 적이 있는데 자신이 경험한 것으로만 법을 이해하는 것은 증상만으로 빠져드는 위험한 일이 될 수 있다. 이 글을 쓰면서 나 역시 그렇게 되지 않기를 불성에 기원한다. 불법은 점을 치는 것도, 퇴마도 아니다. 밝게 아는 것을 신묘한 앞날 예측으로 가리지 말 것이며, 모든 것을 밝혀 평온함으로 돌이켜야 하는 일을 퇴마로 덮어버리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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