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진치의 삼독심은 어디나 있다.
처음 블로그에 글을 적은 것은 내 생각을 적거나 표현하고 싶어서였다. 꼭 불법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 정리된 생각들을 적다보니 생활과 법이 하나로 엮이는 그런 장이 되었다. 블로그는 스스로가 가진 느낌이나 품어오던 생각, 알리고 싶은 견해나 주장 같은 것을 웹에다 일기처럼 차곡차곡 적어 올려서, 다른 사람도 보고 읽을 수 있게 열어 놓은 글들의 모음이라고 한다. 정의를 찾아 적어봤는데, 생각했던 바와 크게 다르지 않다. 또 카페에 글을 적기 시작한 것은 상담글에 남긴 댓글이 처음이었다. 내가 아는 법으로 누군가의 고민을 덜어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램이 있었다. 그러다가 점차 내가 이해하는 법, 경험을 좀 더 적극적으로 나누고 싶어졌고 글을 올리게 되었다.
글을 적는 것은 주가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된다. 경전읽고 염불하고 사유하고 생활 속에서 여러가지 상황들을 마주하다 보면 내 수준에서 알아차리게 되는 법이 있고 그 생각들이 마구 흘러넘치는 순간이 있다. 그런 것을 적고 있다. 내면에서 일어난 것을 밖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불성에 닿아있지 않으면 나눌 필요도 가치도 없는 그냥 사사로운 생각일 뿐이라고 믿는다. 나눌 것이 없다면 드러낼 바도 없다. 바르지 않으면 표현하지 않는 것이 더 선에 가깝다. 늘 그런 생각을 마음에 품고 살아간다.
글을 적는 것이 이제는 혼자만의 일이 아니다. 누군가는 읽어 자신의 수행에 악지식이든 선지식이든 나름 참고를 삼아 길을 나가는 이정표로 삼을 수 있다. 또 불법을 나누는 것은 불성이 기뻐하는 일, 바라는 일이니 글을 적어 법을 나눌 수 있다면 그것이 나로서는 수행자가 해야 하는 당연한 일이기도 하고 기쁜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마음에 집착, 욕망이 느껴진다. 아주 미묘하다. 글 적음은 타인을 위함인가, 나를 위함인가. 그 안에 무엇이 있어 움직이게 만드는가. 간단히 표현하기 어려우며 간단히 이해하리라 생각하지 않지만, 법을 나눈다는 것조차 욕망과 집착이 서린다면 겉모습이 어떠하든 참된 불성의 자비와 지혜에서 멀어진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 밖에서 스며들든 안에서 드러나든 불성의 청정함으로 가득하여 능히 밝히기 위해 수행을 하기 때문이다. 욕망으로 흐리고 집착으로 흐린다면 떠나는 것이 나을 수 있다. 다시 돌이키지 않으면 스스로를 퇴락시키는 독이 될 수 있다. 지금 그런 시기인 것 같다. 생각없이 길을 가다가 점점 선명해지고 날카로워져 다시 스스로 돌아볼 시기. 위기가 곧 기회라고 했다. 수행자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어려워졌다면 더 나아질 기회를 맞이했다고 기뻐하자. 늘 그 길을 불성에 닿아 그 안에 안주하면서 바르게 나아갈 수 있기를 기원한다. 이것이 나의 결정이며 뜻이다.
절필인가? 아니. 모든 것이 변화를 위한 것이다. 충분히 경험하고 배우며 이 또한 넘어갈 것이다. 글도 내 수행이며 생활인데 탐진치를 뽑아 청정하게 만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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