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삼종외도 중 숙작인론, 정해진대로 살 것인가.

향광장엄주주모니 2019. 7. 9. 10:13

부처님께서는 당시 인도에서 유행하던 여러 외도의 사상을 세 가지의 유형으로 나누어 그 잘못을 비판하셨다. 각 내용은

[1] 숙작인론[宿]은 인간의 존재는 과거에 행한 행위에 의해 규정된다는 견해

[2] 존우론[]은 자재신의 자재력에 의해 일체가 전개된다는 견해

[3] 무인무연론[]은 자아와 세계의 나타남에는 논리적 타당성을 갖는 특별한 원인과 조건이 없다는 견해


이상과 같이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되는 외도의 설에 대하여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비판하셨다. 첫째 실증성의 여부로서 숙작인론. 존우론. 무인무연론에는 납득 할 수 없는 논리적 비약이 있고 단상[]에 치우쳐 실증성을 무시하고 있다. 두번째로 상견[]인 숙작인론과 존우론은 존재의 양태를 업에 의한 것과 신의 조작에 의한 것으로 여기어 인간의 죄악문제가 설명되지 않고 우리 인간에게는 잘 살려는 의욕과 노력은 있으나 이것도 설명되지 않는다.


네비어 지식백과로 검색하니 문화콘텐츠닷컴(문화원형 용어사전)에서 위와 같이 말한다고 합니다. 다른 곳에도 아마 비슷하게 나오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오늘 이 중 숙작인론에 대해 조금 적어보려 합니다. 불자로서 어떤 이해가 바른가에 대한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 숙작인론을 숙명론이라고 표현한다고 하네요. 쉽게 말해 과거에 의해 이미 정해졌다는 건데요, 그러니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는 겁니다.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로서는 그대로 다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이 가르치신 진리에 비추면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일단 있지도 않고 있지 않음도 아닌 세계에서 있음을 전제로 말하면 과거의 것으로 현재가 드러남은 맞다 봅니다. 부정하기 어렵죠. 그런 과거의 것으로 일어나는 현재를 받아들이는 수용은 그래서 타당하고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존재인가, 또 어디까지가 정해졌는지를 아는가의 문제입니다. 먼저 부처님이 그리는 우리는 수동의 존재가 아니라 능동의 존재입니다. 그래서 드러난 현상을 수용하지만 동시에 변화, 다시 말해 창조를 향해 나아가는 존재죠. 쉽게 말해 받기도 하지만 짓기도 하는 사람들입니다. 두번째 어디까지가 정해져서 어느정도로 드러나는지 명확히 아십니까? 저는 그런 근기가 아니라서 일단 드러나는 현상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럴만하니 드러나겠지 합니다. 그리고 드러나는 현상을 수용하는 동시에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는 더 부처님의 법으로 장엄하여 밝고 편안하기를 기원하며 지금을 삽니다.


그게 불자인 제가 현재를 보고 미래를 보는 방식입니다. 정해진 것이 드러났다? 괜찮은 일이며 수용해야 하는 일입니다. 내가 지은대로 받는 것이니까요. 그렇지만 모양이 같아도 같지 않은 일이 벌어집니다. 좋은 일이 일어나면 그 좋은 현상을 받을만한가 스스로를 살피고 이 좋은 것이 지속되도록 오늘을 지어가야지요. 나쁜 일이 일어나면 그 현상이 드러난 이면의 죄업을 살펴 반성하고 다시는 그러하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오늘을 지어가야 합니다. 수용과 창조가 동시에 일어납니다. 이건 숙명론자의 그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또 한가지를 들어 적어보겠습니다. 아마도 왜 가만히 앉아 정해진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이 불자로서 권유할 일이 아닌지 이해하기 편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인연을 말합니다. 씨를 뿌렸어요. 그 씨는 가능성의 존재입니다. 조건이 맞아 떨어지면 싹을 틔우고 자라서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런데 그 씨앗이 자랄 조건이 충분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 열매를 만날 수 없습니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드러나기 어려운 일이 됩니다. 우리의 일도 그와 같습니다. 예를 들어 죄업으로 씨를 뿌렸다면 좋지 않은 과업이 호시탐탐 나를 노리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그 죄업이 무르익어 발현될 기회를 차단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니 오늘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명확해지죠. 기다리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밝게 지어가야 합니다. 그것을 부처님은 기뻐하시지 않을까요? 저는 그렇게 배운다고 생각드네요.


어떻게 하는 것이 상황을 바르게 통찰하는 일이 될 것이며 어떻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제자로서 그 가르침을 밝게 따라가는 일이 될까요? 정해졌다고 생각합니까? 저는 정해진 것이 있으나 또한 오늘 바꾼다고 생각합니다. 좋지 않은 나름의 선몽을 꿀 때가 있는데요, 한번도 현실에서 좋지 않게 드러나고 끝난 적이 없습니다. 그런 꿈을 꾸는 순간 마음을 돌이키고 목욕재계하고 바르게 살아갑니다. 오른쪽으로 걸어 낭떨어지에 떨어질 위기를 알았습니다. 그 순간 우리는 방향을 전환하면 낭떨어지를 피할 수 있습니다. 정해졌다고 생각합니까? 예측되는 일도 거스를 수 있는 가능성, 그것이 불법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불자로서 저는 정해진 것을 받아들이는 한편 밝게 만들어가는 날을 살아갑니다.


오늘은 정해진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생각하는 날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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