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상불경보살에게 배우다

향광장엄주주모니 2019. 4. 22. 09:52

어제 법회에서 법사스님의 법문을 들었다. 모든 불보살의 소망인 사홍서원에 대한 가르침을 들었는데 법문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 고개를 갸웃하게 되었다. 법화경의 가르침이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부처님'임을 말한다고 하면서 그 연장선에서 상불경 보살의 예찬을 거론했다. '나는 그대들을 귀히 여기니 그대들은 ......' 신기하게도 마지막 말이 씻은듯이 기억나지 않는다. 어제는 알았는데 오늘 적으려니 그 부분이 하얗다. 말줄임으로 맺은 것은 이어지는 말이 '부처님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지 '부처님이기 때문입니다'인지 기억나지 않아서이다. 스님의 법문 흐름 상으로는 앞의 말보다 뒤의 말이 이어졌을 법한데 잘은 모르겠다.


일단 '지금, 이순간 우리가 부처'라는 말에는 다른 의견을 적고 싶지는 않다. 그리 말한 이유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리 말을 하는 스님의 이해, 사람들에게 표현하고 가르치고 싶은 강조점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불성이 있으니 부처이기도 하지만 부처아니기도 하다고 생각하기에 스님의 드러난 법문에는 반 정도 동의한다. 우리 모두 부처다. 우리 안에 불성이 있다. 그런데 부처 아니기도 하다. 그 불성이 온전히 드러나지 못한다. 두 가지의 측면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뭔가 충분하지 않은 결론에 이르게 된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글을 적는 주된 이유는 상불경 보살을 생각해봄으로써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보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를 생각해보고 싶어서이다. 이미 여러차례 상불경 보살을 글에서 언급했었는데 예찬의 행위 자체보다 그리 말하는 보살의 마음, 믿음, 의지를 생각했었다. 모든 이들이 비웃고 꾸짖음에도 보살은 '나는 그대들을 업신여기지 않습니다. 그대들은 도를 배워(보살도를 수행하여) 부처님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확고한 신념이 아니라면 그런 모습을 갖추기가 어렵지 않을까. 증상만을 품은 이들을 대해서도 그들을 진정 귀히 여겼다. 왜냐하면 그들 역시 부처님의 법을 수행하여 부처님 될 사람이라는 인식이 보살에게는 진실이었기 때문이다.


주변을 둘러보라. 각자의 시선과 기준에서 이해못할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그럼에도 우리는 상불경보살의 예경을 마음에 담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진실이기 때문이다. 지금 비록 모습이 이러해도 그 안에 불성이 있으니, 또 부처님 법과 인연되었으니 모두 부처될 존귀한 자이다. 저열하여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좋은 상대도 있다. 그럼에도 그를 바라보는 마음은 존귀함을 갖춘 대상을 대하는 마음이어야 한다. 쉬운 일은 아니다. 쉽다면 누구나 지금 부처였을테니 어려운 이 일에 마음을 두는 것이 의미있다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