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민한 반응, 착각이라고 할 사람도 있지만 요즘 나의 세계는 그렇다.
2주 만에 장애인 시설로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 지난 번에 강한 인상을 남겼던 예쁘고 젊은 여선생님이 파트너였다. 아, 사실 별로 좋지는 않았다. 일을 마치고 저런 사람이라면 나의 아이를 맡기지 않고 싶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얼굴을 보자 마자 내가 해야 할 일을 과도하게 간섭하기 시작했다. 주방을 담당하는 나에게 인원만 알려주면 지을 밥을 쌀을 퍼서 줄테니 기다리란다. 이상하긴 했지만 알겠다고 했다. 주방으로 들어와 냉장고를 열면서 다른 것은 손대지 말라는 얘기를 한다. 살짝 어이가 없어졌다. 그동안 내가 임의로 쓴 것은 계란 5개였다.(4개인지 5개인지 명확하지 않다. 아무튼 남아있는 계란양을 보고 사용했다.) 똑같은 반찬을 연속으로 내주는게 신경쓰여 조리해준 계란 5개. 도대체 이 사람들은 무엇을 공유하고 있길래 이런 말을 하는 것인지. 혼자하는 말인지 뭐를 듣고 하는 말인지 모를 일이지만 이러나 저러나 불쾌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낮에 주간시설에서 조리해서 올려온 반찬을 가정식 반찬통에 옮겨 담으려고 하니 옮겨담지 말란다. 가만히 있다가 눈을 바로 쳐다보고 물어봤다. 그렇게 하면 안되는 이유가 있어요? 설겆이를 두 번 하게 된다나 뭐라나. 더 말을 할까 하다가 그냥 너 뜻대로 해주마 했다. 사실 설겆이야 내가 하는 것인데 두번 하든 세번 하든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왜 그렇게 하려고 했는지 나도 생각이라는 것을 하는데 말을 해서 무엇하랴. 그들이 늘 언급하듯 나는 잠깐 일하는 사람인데. 좀 많이 웃겨졌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은 왕노릇이 하고 싶구나. 알았다. 하고 싶으면 해라, 왕노릇.
저녁식사를 준비하다가 잠시 뒤 이런 질문을 했다. 동그랑땡을 데워줘도 될까요? ^^ 웃기지 않은가, 이런 질문은? 이런 질문이야말로 어이없어해야 하는데. 그런데 그것을 물어보는게 너무 자연스러운 그런 분위기였다. 대답을 들으니 묻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겉이 익은 것도 있으니 후라이팬에 데우지 말고 전자렌지에 어떤 그릇에 넣어서 데우란다.
오 마이 갓! 도대체 당신은 무엇때문에 이렇게 된 것인가. 이제 3번 만났지만 그 사람이 어떤 훈육을 받아왔는지 추측이 되었다. 그것이 가정이든 다른 조직이든 정한 선을 넘어서는 것이 하늘 두 쪽나는 그런 일인 사람에게 꽤 오랜 기간 훈육을 받아왔을까. 시설에서인지 아니면 성장과정에서인지 모르지만 자신에게 익숙하고 요구되었던 방식으로 아이들을 지도했고 아이들은 서로에게 '이거 하면 안돼'라는 말을 하기도, 서로의 행동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자녀가 어떤 말과 행동을 하는지 보면 부모의 말과 행동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게 자신이 정한 완벽함을 놓치지 못해서인지 그녀가 담당하는 날에는 가끔 아이들과 큰 소란이 있는 듯 했고 그것이 문제가 되었던 것 같았다. 그 사이에 관리하는 사람에게 지도를 받았는지 몇 주만에 보니 아이들을 대하는 모습이 사뭇 달라졌다.
다 적기도 어렵고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지만 뭔가 자신만을 내세우고 군림하려 하는 그녀를 대하고 있으니 별로 좋지는 않았다. 그저 당신이 하고 싶은 왕노릇을 다해라, 나는 크게 상관없으니, 이런 심정으로 저녁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별로 좋지 않은 마음이었고 내가 할 선을 정한다면 그 선만큼만 해주면 나도 편하다는 심정이 되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아, 정말 쓰레기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 그 용어였다. 몹쓸 마음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저 소리를 내지 않았을 뿐, 차분한 가운데 얼굴을 마주하고 당신이 정말 쓰레기같다고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화가 났다기보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고 굳이 좋은 마음으로 돌이키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내가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갔다. 분위기를 대강 보니 일을 하면서 서로 배려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이건 너의 일, 이건 나의 일. 음식물 쓰레기가 차면 다음 사람을 위해 버리고 가면 좋을텐데 나한테만 그러는 건지 주방에 들어가면 음식쓰레기가 가득했다. 처리하고 갔어야 하는데 그대로 나를 위해 남겨두는 것 같았다. 할 수 있으면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대단한 일도 아니고.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는데 문득 보니 엄지손톱이 깨어져 있다. 쓰레기를 버리면서 그랬던 것 같다. 오늘 마음 곱게 쓰지 않아서 그런가보다 했다. 모든 일이 일어나는 것은 이유가 있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할 뿐. 그래서 안좋은 일이 일어나면 뭔가 바르지 못함이 있는가 나를 늘 확인하는데 오늘은 함께 일하는 이에게 좋지 않은 마음으로 속으로지만 쓰레기라 했으니 손톱으로 끝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취침 전 빨래를 함께 정리해주고 잠자리에 들려 하니 먼저 자도 되는데 빨래 때문에 잠을 안잔거냐고 한다. 처음 그녀가 일을 알려줄 때 빨래는 상황따라 이 사람이 하기도 저 사람이 하기도 한다고 했다. 굳이 묻지는 않았지만 함께 일한 사람들 모두가 아이들을 씻긴 후에 빨래하는 것을 자신들이 전담해서 하는 모습이었으니 굳이 내가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을 것 같다. 그래도 별 상관은 없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고 도움되면 좋은 일 아닌가.
세, 네차례 일을 했을 때 관리자가 그런 말을 했다. 처음 마음 그대로 하면 좋다고. 또 수당이 약한 것도 아니라고. 그 말을 듣고 나서 그런 생각을 했다. 아까워하면서 주는 돈이라면 나는 이 일을 하고 싶지 않다고. 처음 마음을 언급한 것은 내가 일을 시작하면서 보인 모습이 좋다는 소리일텐데 누가 변하는 것일까. 나인가. 책임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려는 내 마음을 제한하는 것은 아쉽게도 내가 아닌 것 같다. 물론 크게 변할 정도가 된다면 일을 스스로 관두지 않을까 싶다. 수당이 약하지 않다는 것은 이미 정해진 조건이다. 어차피 책정된 수당이면 누구를 쓰는가의 문제인데, 나 이상의 사람이 있다면 바꾸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일을 할까를 고민했을 때, 너무 오래 일하고 싶지 않다,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면 좋겠다, 내 일로 사람들이 도움받고 좋아하는 일이었으면 좋겠다, 보수는 생활할 정도라고 했다. 남들이 말하는 높은 보수, 폼나는 일, 까다로운 조건을 내세워 구한 것도 아닌데 서로 마음 다해 웃지 못할 수준이라면 빨리 관두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가끔 선생님들이 아이들이 누군가(선생님)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에 예민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나는 말이다. 그냥 이해하고 싶고 의견을 나누고 싶다. 혼자만의 세계에 빠진 아이는 밖으로 나오라 손짓하고 싶고 한가지만 말하는 아이는 말할 거리가 그것말고도 많은 세상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을 뿐이다. 무엇을 말하는 것이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눈을 맞추고 나누고 싶을 뿐이라 아이가 누구를 많이 좋아한다고 하면 그것을 나름 기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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