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수행의 중도, 가볍게 적어보는 글

향광장엄주주모니 2019. 6. 25. 22:12

죽어라 기도했더니 나쁜 일만 생기더라는 어떤 이의 글에 대한 생각을 적었었다. 그 표현을 빌어 가볍게 적는 글이다. 그러니 아주 가볍게 읽어야 한다. 나쁜 일에 대한 이야기 아니고 '죽어라 기도'에 대한 이야기다.


왜 죽어라 할까. 그것이 그대의 중도인가.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가장 최적의 선. 그게 중도 아닌가. 부처님 제자 중에 부처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과도한 수행을 하다가 눈이 멀었다는 제자의 이야기를 들어봤을 것이다. 물론 그 제자는 수행에 성취를 이뤘고 육신의 눈이 멀었지만 다른 눈이 떠진 것으로 안다. 요부분은 살짝 명확하지 않은데 그리 기억된다. 아무튼 좋은 일이 되었다. 그런데 만약 부처님의 말씀을 따랐다면 어땠을까. 나의 관심은 여기에 있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최적의 수행을 부처님 따라 해나갔다면? 질문에 대한 답은 적지 않을 것이다. 글을 읽는 이들의 몫으로 남기련다.


가끔 그런 발원을 한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하시라. 나의 수행을 말하자면 지금으로서는 늘 모자라지 싶다. 아마 내 선에서는 죽어라 하는 수행이 최적일지도 모른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바로 여기에 있다. 각자의 중도를, 최적을 알아가라. 각자의 중도를, 최적을 알아가는 것, 그것이 또 하나의 수행이다. 그것을 정확하게 말해주는 이가 있다면 그야말로 그대에게는 눈이 밝은 선지식이다. 그러니 죽어라 하든 쉬엄 쉬엄 하든 나에게 최적이 무엇인가를 고민해보는 것도 유익할 것 같다. 경험상 일정한 분량(살짝 부담된다 싶을 정도(?))을 꾸준히 하다 보면 이런가 싶은 무시못할 생각드는 시점이 오는 것도 같다. 과해서 삐끗하는 것도, 너무 쉬엄쉬엄해서 맹맹한 것도 개인적으로는 추천하고 싶지 않다. 하나는 위험하고 하나는 유익을 이루기 어렵지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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