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염불을 했고 법화경이 앞에 있었지만 고난은 계속되었다.

향광장엄주주모니 2018. 11. 20. 12:06

오늘은 꿈이야기다. 가끔 신행수기 같은 것을 보면 염불하니 꿈에서 귀신이 물러갔다는 비슷한 글들을 심심치 않게 본다. 그 때 속으로 그런다. '나는 아닐 때도 많은데...' 그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하고 알쏭달쏭하다. 꿈에서 비슷한 경험을 하는데 늘 염불로 해결되지는 않았다. 왜일까? 그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아직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기도 하고 하나의 이야기로 마무리 할 수 없는 여러가지 측면이 연결된 이야기가 될 것 같아서 지금 쓰는게 괜찮을까 싶기도 하지만 시작을 해놓고 싶다. 글이 길을 걷다가 미로에 빠진 것 같은 난해함으로 이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예전에 꿈에서 아미타불, 지장보살 하면서 내가 다 없애버려야겠다고 생각한 장소에 장풍을 쏜 적이 있다. 그 곳을 수호하는 존재(?)에게 신나게 얻어터지고 있는 위기의 순간에 누군가가 그곳에서 건져주었다. 어떤 꿈에서는 아파트 거실에 좀비같이 생기없는 사람들이 가득했는데 한 사람 한 사람 아미타불을 부르게 하면서 문을 통해 나가게 한 적이 있다. 그들은 감정없는 얼굴이지만 작은 소리로 아미타불을 따라부르며 집에서 나갔다. 또 다른 꿈에서는 쓰러진 이에게 아미타불을 해주니 그거 말고 외국어같은 것을 해달라고 요청받은 적이 있다. 법화 다라니를 해달라는 것인가 보다 했는데 외우고 있지 않아서 해줄 수 없었다. 아무튼 꾸고 나서 뭔가 염불의 위신력을 생각하게 하는 꿈들이었다.

 

그런데 늘 꿈이 그렇게 흐르지는 않는다. 무섭고 위험한 상황에 닥쳐서 간절히 염불을 했는데 그 상황이 변화하지 않는 순간이 꽤 있었다. 다행인 것은 무서운 상황일 뿐 내가 직접적으로 해를 입지는 않았다. 한동안 왜일까를 고민했다. 왜 그 찬란히 빛나는 무량한 힘과 공덕이 담긴 명호를 애절하게 불렀음에도 변화하는 것이 없었을까? 고민 후에 닿은 하나의 답은 '나'였다. 물론 상황마다 다르니 그 상황에 부합되는 답일 뿐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답은 이러하다. 애타게 염불하는 그 순간, 나는 두려움을 일으키는 존재가 외부의 존재라고 생각하기에 물리쳐달라는 마음을 담아 불렀다. 그런데 실상을 본다면 무엇에서 무엇을 구하는 것일까?

 

위험을 만든 존재, 무서움을 만든 존재는 누구일까? 외부의 존재? 그런데 그것이 다름아니라 나라면 어떨까? 내가 지은 것이 나를 위험하게 하는 것이라면? 만드는 것도 당하는 것도 나라면? 그것은 아미타불을 불러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 내가 알아차리고 벗어나야 해결되는 문제다. 불보살님의 손을 잡고 넘어가야 하겠지만 내가 해결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된다. 아마도 수행을 해오면서 변화하는 나의 법계가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이것은 너의 문제다. 그것을 알아차리고 벗어나는 노력을 할 시기'라고 법계가 전하는 메세지같다. 그래서 그런 꿈을 꾸고 나면 꿈의 경계가 밝아지는 관을 하고 그런 방향으로 마음을 쓴다. 

 

또 하나의 답은 주변에 있는 어떤 상황을 보여주고자 하는 누군가의 의지가 아닐까 싶다. 사람을 만나 교류를 하고 내면으로 깊이 개입이 되는 날이 있다. 그런 날 밤에는 꿈을 꾸기도 하는데, 깨고 보면 나에 대한 꿈이라기보다는 그가 어떠한지에 대해서 보여주는 것 같은 꿈일 때가 있다. 지인을 통해 어떤 이를 처음 만나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면서 삶의 위기를 맞이한 것 같다고 느낀 날에는 머리를 길게 풀어헤친 여자가 내 방안에서 뒤돌아선 채 한참을 서있기도 했는데 아무리 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불러도 사라지지 않았다. 누군가가 이것을 알아달라는 의지로 펼친 경계인데 무섭다고 사라지게 해달라고 한다면 좀 이상할 것 같다. 그런 이유에서일까 그런 꿈은 나의 원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보여진 후에 사라진다. 무섭지만 해치지는 않는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그건 당신의 믿음이 그 정도라 그렇다고.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믿음의 결여로 그런 것임을 말한다면 뭔가 동의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 지금까지 만나온 불성, 내 안의 불성이 그렇게 느끼게 한다면 심한 착각일까?

 

최근 꿈은 또 다르다. 뭔가 위험이 닥쳤음을 인지하는 순간이 있지 않은가? 꿈에서 그랬다. 이제 안 좋은 일이 닥쳐올거라는 예감이 사무치게 들었을 때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손을 잡으며 아미타불을 함께 불러달라고 했다. 나 역시 아미타불 염불을 했다. 그때 신기하게도 내 눈앞에 지금 읽는 법화경이 보였다. 꿈에서도 이게 뭐지? 했다. 그렇게 함께 부르고 보인 적이 없었다.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런데 더블로 안전해야 할 그 상황에 위험이 닥쳤고 나를 해치려는 사람은 나의 머리를 잡고 괴롭혔다. 꿈을 깼다. 위험을 느낀 적은 있었지만 언제나 그것에서 떨어져 있었는데 꿈에서 고난을 당하고 보니 어리둥절했다. 앞으로 내가 해를 입을 일이 있는건가 싶기도 했다.

 

아직 마음에 닿는 답을 찾지는 못했다. 그 답도 결국은 나에게서 찾겠지 싶긴 하다. 꿈이 뭐 별거냐 한다면 그렇기도 하지만 무의식의 흐름을 관찰하면 나를 알 수 있다. 나 이제 착해졌나봐 하며 살아가는데 꿈에 빵 하나 나눠주는 것을 아까워하는 자신을 만나면 얼마나 웃긴지 아는가? 아직 멀었구나. 아직 나에게 이런 것이 있구나 한다. 집착하지 않지만 무시하지도 않는다. 다만 스스로를 상황을 이해하는 방편으로 삼아 나아가면 꿈, 상당히 좋은 수행의 파트너다.

가끔은 마의 장난인가를 생각한다. 그때는 마는 마의 일을 하고 나는 나의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 중간 중간 경계하고 확인한다. 집착하지 않지만 무시하지 않는다.

 

언젠가 염불하고 법화경이 있었지만 해를 입은 이 꿈에 대한 답이 마음에 닿으면 그때 글을 또 올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