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포용하는 것, 가리지 않는 것이 참으로 멋져 보인다. 궁극에는 나도 그러하길 바라지만 마음이 그러해도 가릴 수 밖에 없는 나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이미 내 글에 여러 차례 조금씩은 언급되었으나 요 며칠 다시 마음에 다가오는 불편함, 걱정이 있어 글을 적는다.
불성이 있으니 부처의 품성을 지니지만 매우 약한 존재라는 생각을 한다. 여러가지 비유를 들어 말할 수 있는데 오늘은 불꽃으로 해볼까 싶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으면서 우리 내면의 불성이 서서히 드러난다. 다르지 않는 불성이지만 달리 나타난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여러가지 제한으로 우리의 불꽃은 불의 속성이지만 그렇게 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이 불꽃으로 따뜻하게 만들고 밝게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들기도 하고 그런 마음 들도록 하는 환경도 만난다. 그런데 내가 어떤지 알지 못하고 그냥 나섰다가는 작은 바람에도 금새 꺼져버리고 만다. 밝히겠다고 했는데 내 불꽃이 사라져버린다. 어둠이 닥치고 추위가 닥친다. 지혜로운 이의 선택이라고 보는가.
모든 것을 포용하고 가리지 않는 것은 그럴 근기가 되고 그럴 힘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글을 적는 나 역시 아직은 아주 약한 존재이다. 변화하고 있어 예전에 비해 더 밝아졌고 견고해졌지만 내가 밝힐 수 있는 세상이 얼마나 크겠는가. 그러하기에 마음은 만 천하를 담으려 노력해도 실제 마주하는 대상을 가린다. 아직 내가 견고하지 못한데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 하면서 다 마주한다면 나의 불꽃이 빛을 잃고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 물론 누구나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이 과정을 건너뛰는 사람은 없지 싶다.
모든 환경 중에 사람이 가장 중하다. 그만큼 영향력이 크다. 그러니 그 사람을 대함에 신중한 것이 좋다. 좋은 것에서도 배우고 나쁜 것에서도 배우지만 늘 배우기가 어렵다. 무슨 말인고 하니 나쁜 것에서 정신차리고 배우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어찌 사람을 대함에 그저 좋다 좋다 할까. 더욱이 부처님 법을 배워가는 우리가 어떻게 도를 함께 배워가는 대상을 가리지 않겠는가.
부처님은 재세시에 어리석은 사람을 멀리 하라고 여러차례 말씀하셨다. 모두를 자비로 품을 뿐인 부처님이 그리 말씀하신 이유를 우리는 마음에 새겨야 한다. 마음은 모든 세상을 자비롭게 담되, 우리의 근기에 따라 마주해도 좋은 대상, 피하는 것이 좋은 대상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게 수행해가면서 근기가 높아지고 지혜, 자비, 원만한 힘으로 충만해지면 마주할 세상이 점차 넓어질 것이며 안전하고 평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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