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편을 논외로 한 현상에 대한 글이다. 오늘 문득 예전에 나무아미타불 카페 게시판에 일원상에 대한 사진을 엄청나게 올리던 사람이 생각났다. 그가 올리는 법화경 기도 가피에 대한 글, 신기한 현상으로 표현하는 일원상 사진에 많은 이들이 열광했었다. 누군가에게는 신심을 불타오르게 하는 그런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개인적으로는 법화경을 1년 넘게 읽어가던 시기였던 것 같다. 그래서 그가 일원상 사진에 대해 많은 글들을 올리고 하는 것이 좀 불편했다. 법화경은 그런 가르침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방편을 논외로 한다는 말은 신묘함을 방편삼아 부처님의 법으로 사람들을 이끄는 것을 논외로 하겠다는 말이다. 뭔가 신묘함을 보여 불법으로 사람을 이끄는 것은 좋은 일이다. 법화경 묘장엄왕본사품에 나오길, 왕의 두 아들인 정장과 정안은 부처님이 허락하신 신통변화를 통해 아버지를 바라문 법에서 불법으로 이끌었다. 왕은 부처님 앞에서 그런 두 아들을 선지식이라 칭했으며 부처님은 그 말을 인정하셨다. 좋지 않은가. 그렇게라도 불법에 들게 하는 것은 부처님의 뜻에서도 어긋난 것이 아니라고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말이다. 중요한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 자리에 계속 머물러 있다면 그것이 과연 부처님의 뜻이며, 기뻐하실 일이겠느냐는 것이다. 묘장엄왕도 정장, 정안의 신통변화를 보고 부처님에게 귀의한 후에는 설법을 듣고 그 법을 사유하고 통달하여 부처님 되리란 수기를 받았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법문에 들어왔다면 신묘한 현상에 매일 것이 아니라, 부처님이 나를 사랑하여 힘내라고 나에게 이런 것을 보여준다고 기뻐하는데 마음쓸 것이 아니라 신묘한 현상 너머에 있는 법을 배우고 사유하여 통달하는 데 힘써야 한다.
생각해보라. 법화경에 나오길 부처님은 미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고 했다. 불성 본연의 모습이 그러한데 나를 사랑하는 부처님, 그래서 일원상을 늘 보여주는 부처님이라고 몇 년간 주장하면 이상하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은 현상에 매이는 마음에 지나지 않는다. 설령 그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법보다 중요하지 않으니 그대는 법을 배우고자 하는가. 누군가 말하길 일원상이라고 올리는 사진들이 카메라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런 현상이라 했는데, 솔직히 그렇든 아니든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자신의 마음이 어떠한지 알아가는 것이 비교할 수 없이 중요하다.
궁금하지 않은가. 그리 법화경을 주장하면서 부처님이 무엇을 전하고자 하심인지. 그것을 정말 중요하게 여겼다면 그대의 전법은 이제 일원상이 오늘도 보였어요가 아니라 부처님은 이렇게 가르치십니다라는 아름다운 말로 채워져야 한다고 본다. 언제까지 시작을 위한 방편에 머물러 진실한 법을 마주하지 않으려는가. 언제까지 그대가 가진 한계 안에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가두려 하는가. 물론 각자 인연따라 뜻따라 나아가니 각자의 길로 가게 된다 믿지만 법화경을 알았다면 불성이 가장 기뻐할 일을 함으로 우리의 삶을 장엄해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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