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가르침은 그대로 좋다. 하지만 이해하는 근기가 다르니 어떤 가르침을 읽었을 때 좋게 느껴지는 감흥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래서 자신의 근기가 감당할 법을 찾는 것이 좋은데 기본적으로 정법이어야 한다. 근기가 다르니 같은 법을 읽어도 다른 수준에서, 다른 시각(?, 그래도 법을 훼손하면 안되는 일이다)에서 이해한 다양한 법문이 펼쳐지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공부하는 이들이 서로 공감하게 되니 그것이 법을 제대로 공부한 수행자에게 허락되는 내면적 교류라고 생각한다.
내가 받아들이기 좋은 수준에서 이해하여 적은 글을 읽으면 부처님의 날 것 그대로의 가르침을 읽을 때보다 쉽게 고개가 끄덕여지고 즐거움으로 충만해지기도 한다. 하나를 알만한 사람은 하나에서 즐거움을 느끼는데 그것을 넘어서면 이상하게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또 열을 알만한 사람은 열가지 안에서 자유로운 즐거움을 느낀다. 예전에 황전스님의 글을 읽을 때 마음에서 일어나는 거부감이 있었다. 아마 그 시절 내 수준을 벗어나는 글이였지 싶은데 이상하게 자꾸 마음이 갔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 읽어가면서 스님의 법문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얼굴 한번 본 적 없으나 선지식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글을 적으니 누군가는 이런 말을 할 것이다. 당신이 나의 논리, 우리의 논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펼치는 것이 당신의 이해능력을 벗어난 높은 논리이기 때문이라고. 그런데 밑도 끝도 없는 착각이라고 말하고 싶다. 개인 의견에 지나지 않지만, 어떤 논리를 이해, 수용하지 못하는 것은 그것이 내 이해능력을 벗어나기 때문이 아니라 아무리 생각해도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경전에서 비롯되지 않은 논리이며 경전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더라도 눈에 보이는 명백한 것마저 포용하지 못하는 잘못된 이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글이 잠시 옆으로 샜는데 아침에 이런 저런 정리를 하다가 즐겨찾는 아비라 카페에 들어가 글 제목을 훑어보았다. 읽고 싶은 마음이 이는 글들이 있어 읽어 나갔다. 100%는 아니더라도 고개가 끄덕여지고 부처님의 법을 함께 배워나가는 선지식, 도반을 대하듯 마음이 밝고 즐거워짐을 느꼈다. 그런 글들이 찾아보면 참으로 많다. 부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다 알지 못하더라도 차츰 차츰 삶을 영원하게 밝혀 줄 진리로 나아가게 하는 길로 들어서게 하는 글인지 아닌지 가늠할 수 있다. 이제 출발한 사람, 한참 걸어가고 있는 사람 등 우리 모습이 달라 하나가 좋다 주장할 수 없지만 무엇을 대하든 그것은 삶이 영원하게 밝아지는 부처님 가르침 최후의 목적, 우리도 부처가 된다는 것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고통을 벗어나고 소망을 성취하는 것을 강조할 수 있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소망성취를 이야기하며 기도로 이끄는 것은 많은 불자들의 시작이 되지만, 겉으로 똑같은 것을 말하더라도 그 과정, 길, 목적지를 바르게 알고 이끌어가는 밝은 선지자의 글을 가려서 읽어야 참으로 밝은 날을 기약할 수 있다. 그러니 오늘은 어떤 글을 읽고 어떤 길에 들어섰건 그렇게 되기를 소망하며 그렇게 되리라는 원을 한번쯤 소리내어 온 법계에 홍포하면 좋지 않을까 싶다. 그 원이 정말 위험한 순간 당신을 이끌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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